[스포츠조선 백지은 기자] 드라마팬들은 알겠지만 소재현PD는 tvN '백일의 낭군님' 이전에 '비밀의 숲'을 히트시킨 장본인이다.
'비밀의 숲'은 은 2017년 6월 방영된 작품으로 검찰 비리를 냉철하게 꼬집는 현실적인 대본과 조승우 배두나 유재명 이규형 신혜선 등 배우들의 열연에 힘입어 최고 시청률 6.6%(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기준)을 기록, 대표적인 웰메이드 작품으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이어진 '백일의 낭군님'은 쫀쫀한 대본과 아기자기한 연출, 도경수 남지현 김선호 김재영 조성하 조한철 등 배우들의 명연기로 입소문을 타더니 지상파 포함 동시간대 1위를 차지한 것은 물론 역대 tvN 월화극 최고 기록까지 갈아치우며 '작은 괴물'로 승승장구 하고 있다.
눈여겨볼 만한 점은 '비밀의 숲'과 '백일의 낭군님' 모두 사전제작 드라마라는 것. 이제까지 사전제작 드라마가 흥행에 성공한 것은 김은숙 작가의 '태양의 후예', 백미경 작가의 '품위있는 그녀' 정도다. 그외에 '로드 넘버원' '화랑' '함부로 애틋하게'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 '사임당, 빛의 일기' 등이 막대한 제작비와 헉 소리 나오는 캐스팅에도 흥행에 실패하며 '사전제작 징크스'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런데 이 징크스를 깨고 두 작품 연속 흥행에 성공했다는 것은 업계에서도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사전제작의 장점은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거다. 다만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작품에 매달리는 시간이 길고 지표가 없다는 게 단점이다. 지표가 없으니까 작품이 잘되면 배우들이나 스태프가 신 나서 하는 게 있는데 그걸 모른다는 게 단점이고, 대신 작품이 잘 안되면 분위기가 다운될 수 있는데 그런 것 없이 평정심을 유지하며 집중할 수 있다는 건 장점이다."
소PD가 꼽는 사전제작 징크스 깨는 비결은 '소통'이다.
"'비밀의 숲' 때부터 시스템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편이다. 파트별로 전문가를 기용하고 그분들의 의견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했다. '비밀의 숲' 때는 사전제작이 처음이었는데 그럴수록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드라마가 그렇지만 특히 사전제작 드라마는 엔딩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엔딩이 궁금해야 힘을 받고 다음회를 보니까 특히 그렇다고 본다. 그런 엔딩을 결정할 때도 시청자 의견을 들을 수 없으니까 우리끼리 모집단처럼 만들어서 서로 의견을 물었다. 나이나 직급에 관계없이 다양한 나이와 성별의 사람들이 다양한 눈으로 자유롭게 의견을 내는 게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커뮤니케이션이라 생각했다. 그게 전락적으로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내가 맞다'는 독선에 빠지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각자 자율적으로 일하니까 힘을 내주셨다. 2002년 국가대표 같은 느낌이었다. 화려하거나 유명한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모두 힘을 합하는 프로덕션이었다. 안정적으로 고퀄리티를 낼 수 있는 프로덕션을 했던 게 좋게 작용한 것 같다."
또 다른 비결은 '선택'과 '집중'이다.
"'비밀의 숲'과 '백일의 낭군님'이 장르는 다르지만 여기에 맞는 스태프를 구성하면 그 맛을 낼 수 있는 것 같다. 사극에 도전해보고 싶었고, 회사에서도 사극이 오랜만이니까 어떤 차이를 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사극은 미술이 중요하겠더라. 그래서 미술에 제작비의 20%를 넘게 썼다. 바닥도 전부 전통 공예 한지로 만든 거고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썼다. CJ 드라마의 아이덴티티는 영화와 드라마 중간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했다. 한계는 있겠지만 그걸 살리고 싶었고 최대한 차별성을 준 게 미술이었다. 요즘은 색보정이 굉장히 중요한데 송주현 마을은 자연광을 이용해 예쁜 마을을 그리려 했고 궁은 좀더 블루톤을 많이 써서 차가운 느낌을 내려 했다. 회의도 정말 많이 했고 유채꽃밭 메밀밭 등 전국 방방곡곡 예쁠 때를 찾아 답사도 많이 다녔다. 이제는 다른 사극을 봐도 어디에서 찍었는지 다 알겠더라. 한 두씬 밖에 못 찍더라도 욕심내서 갔다. 미장센을 살리려 노력했는데 퀄리티 좋다는 말을 들어서 좋다."
사실 '비밀의 숲'도 '백일의 낭군님'도 쉬운 작품은 아니었다. '비밀의 숲' 같은 경우는 신인 작가 이수연의 데뷔작이었기 때문에 편성도 쉽지 않았다. '백일의 낭군님' 또한 캐스팅 단계부터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으며 만든 작품이다. 소PD는 그 어려움을 이겨내게 해준 배우들에게 모든 공을 돌렸다.
"'비밀의 숲'도 사실 3~4년 전 대본이었다. 그런데 배두나 선배가 대본을 마음에 들어해 조승우 선배에게 추천했고, 조승우 선배도 답을 빨리 줘서 그렇게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조승우 선배는 정말 리스펙트가 생겼다. 정말 준비를 많이 하고 생각지 못한 부분까지 짚어낸다. '황시목이 왜 황시목이냐'고 묻기도 했다. 시목이 '뗄 나무'라는 뜻이 있는데 자신으로 인해 사건이 발생하기 때문에 황시목이냐고 물을 정도였다. '백일의 낭군님'은 청춘 로맨스 사극이라 20대 배우를 캐스팅 해야 했는데 아무래도 사극이라 남자 배우들이 좀 부담스러워했다. 그런데 도경수 쪽에서 먼저 제안을 줬다. 도경수의 전작을 다 모니터링 했는데 이율 연기도 가능할지 궁금했다. 그런데 한번 보고 그런 게 없어졌다. 첫 만남 자리에서 봤을 때 눈이 맑고 자신감이 있었다. 도경수가 말이 없는 편이라 '이런 연기 괜찮냐'고 하면 조용하게 답했는데 '제가 다 죽여버릴거예요'하는 표정이 있었다. 그 다음부터 우려가 없어졌다. 알아서 잘 하겠다 싶었다. 또 얼굴이 고급지고 귀한 상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왕자 역할에 잘 맞았다. 자신감도 멋졌고 웃는 게 굉장히 매력적이다. 시기가 잘 맞았던 것 같다. 두 작품 모두 배우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프로젝트였다. 매주 월드컵 같았다. 배우들이 다 고맙다."
그렇다면 '비밀의 숲'과 '백일의 낭군님'은 그에게 어떤 드라마로 남았을까.
"'비밀의 숲'은 '괴물이 탄생했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생각도 못했는데 처음 상도 받아봤고 괴물 같은 작품이었다. '백일의 낭군님'은 조금 느낌이 다르다. 너무 행복하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프로젝트였다. 배우 스태프 다 착한 사람들이 만든 착한 드라마라 더 아이 같은 느낌이 드나보다. '좀더 올라가' 하고 응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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