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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 힐만 감독 살린 김강민-박정권 두 베테랑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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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지 못한 설움, 얼마나 풀어내고 싶었던 것일까.

SK 와이번스 트레이 힐만 감독은 김강민, 박정권 두 베테랑 선수를 바라보며 어떤 생각이 들까. 고마운면서도 미안한 감정이 교차하지 않을까.

SK는 27일, 28일 양일간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플레이오프 1, 2차전을 모두 쓸어담았다. 85.7%의 확률을 잡았다. 5전3선승제 플레이오프에서 역대 2연승을 거둔 14팀 중 12팀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1차전과 2차전 영웅은 누가 봐도 이 선수들이다. 1차전은 9회말 극적인 결승 끝내기 투런포를 때린 박정권(37), 2차전은 3회 동점타에 이어 5회 결승 솔로포를 날린 김강민(36)이다. 김강민은 박정권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쏠린 1차전에서도 4회 중요한 투런포도 때려냈었다.

이 두 선수가 이렇게 뜨거운 활약을 펼칠 거라고 생각한 이가 얼마나 될까. 두 사람의 실력을 의심해서가 아니다. 자신들의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2000년대 후반 SK가 3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할 당시 주축으로 활약했다. 특히 박정권은 2009 시즌 플레이오프 MVP, 2010 한국시리즈 MVP, 2011 플레이오프 MVP 등 '가을 사나이'로 정평이 나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젊은 후배들이 치고 나오며 점점 자리를 잃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시즌을 앞두고 트레이 힐만 감독이 부임하며 두 사람의 입지가 확 줄었다. 2016 시즌 115경기에 출전했던 김강민은 지난해 88경기, 올해 80경기 출전에 그쳤다. 사실 이번 플레이오프 김강민이 주전 중견수이자 리드오프로 출전하게 된 것도 노수광이 부상을 당한 영향이 컸다.

그나마 김강민은 사정이 나았다. 2016 시즌까지 풀타임으로 활약하며 부동의 중심타자로 뛰던 박정권은 지난해 118경기 출전 16홈런으로 자존심을 세웠지만, 올해는 아예 개막 엔트리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6월 7경기, 그리고 10월 확대엔트리 실시 후 뛴 7경기가 전부였다.

국내 감독들은 경험을 갖춘 베테랑들을 어느정도 인정하며 팀을 꾸려간다. 하지만 힐만 감독의 강공 드라이브는 거침이 없었다. 베테랑 선수들 입장에서는 어느정도 기회를 얻고 경쟁에서 밀려 2군에 있어야 한다면 모를까, 아무 것도 해보지 못하고 2군에 있거나 주전으로 나서지 못하면 야구를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 들 수밖에 없다. 이 두 선수가 6월 1군에 함께 등록된 것도 힐만 감독의 의지가 아닌 구단 수뇌부의 지시 때문이었다.

만약, 두 사람이 심적으로 포기하고 대충 훈련하고 경기를 준비했다면 과연 이런 가을의 대반전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박정권은 1차전 후 "2군에서 힘든 적도 많았다. 하지만 나 스스로를 놓지 않고 어떻게든 붙잡았다"고 말했다. 이어 "1군에서 거의 뛰지 못했기에 엔트리에 들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 일이 벌어지더라도 내 스스로를 다독이려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참고 열심히 하다보니 엔트리에도 이름을 올렸고, 나에게 좋은 찬스도 왔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SK는 두 사람이 자리를 잠시 비운 사이 한동민, 노수광, 김동엽 등의 새로운 주축 선수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이 선수들이 좋은 활약을 펼쳐 올 정규시즌 2위를 차지할 수도 있었다. 이제 남은 목표는 하나. 한국시리즈 우승이다. 그 마지막 퍼즐 조각을 김강민, 박정권이 맞춰주는 모양새다. 확실히 가을야구에서는 베테랑들의 경험과 젊은 선수들의 패기, 그 조화가 필요하다.

인천=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