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경마전설 이규승의 마장산책

by

지난 1990년 11월의 일이다.

이른 새벽 기수들이 경주마를 타고 조교하기 위해 경주로에 들어섰다. 동이 트기 훨씬 전이어서 칠흑같이 어두웠지만 경주로는 조명등이 훤히 밝히고 있었다.

경주마를 타고 3코너, 4코너를 돌아 결승선에 다다를 때쯤이다. 타고 있던 경주마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날뛰었다.

기수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말을 진정시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앞에 시커먼 물체가 떨어져 있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며 살펴보다가 아연실색했다.

사람이 쓰러져있었던 것이다.

늦가을이지만 경마장은 공기 청정지역이어서 제법 한기가 느껴졌다. 그런 날씨에 경주로에 쓰러져 있다면 숨졌을 게 분명했다.

기수들은 소름이 쫙 끼쳤으나 혹시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다가갔다가 또 한번 놀랐다. 쓰러져있는 사람은 동료인 황영원 기수(전 조교사)였던 것이다.

흔들어대니 황씨가 힘없이 눈을 떴다. 기수들은 즉시 병원으로 옮겼다.

황씨는 체중을 빼기 위해 식음을 전폐하고 출근, 조교를 시작하기 훨씬 전인 새벽 3시부터 모래로 덮인 경주로를 달리다 쓰러졌던 것이다.

평소 체중이 62kg이나 돼 경주에 출전하려면 10kg 이상 줄여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그래서 식사로 경마가 끝나는 일요일 저녁 한끼만 하고 나머지 날에는 블랙커피 한잔씩으로 대신했다. 영양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매주 월요일마다 닝거주사를 한병씩 맞았다.

안양 집에서 경마장까지 매일 달리기로 출퇴근했다. 그리고 경주로를 매일 7~8바퀴씩 달리고 나머지 시간은 사우나에서 보냈다.

그래도 체중이 덜 빠지면 이뇨제를 10알씩 먹었다.

한번은 새벽 조교에 나가려는데 체중을 너무 뺀 나머지 기운이 없어서 말 등에 안장을 올리지 못해 관리사에게 부탁한 뒤 올라타다 졸도, 병원으로 실려간 적도 있었다.

이 때문에 출전 기회도 많이 얻지 못했다. 출전횟수가 많아야 연간 50여회였고, 한자릿수인 해도 있었다.

가장 추억에 남는 명승부는 지난 1994년 4월16일 '쇼파라'를 타고 우승했을 때란다.

"신우철 조교사(은퇴)로부터 출전 이틀전 '김용선 기수(현 장수육성목장 조련사)가 낙마 부상을 해 출전하지 못하게 됐으니 대신 기승해달라'는 연락을 받았지요. 얼마나 좋던지 당장 내의를 잔뜩 껴입고 우의를 걸친 다음 집(안양)까지 달려갔지요. 이틀간 그런 식으로 출퇴근해 체중을 줄이고 경주로에 나서면서 상대 기수들을 살펴보았지요. 굶고 나온 저와 달리 보약을 먹고 나왔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오기가 치밀더군요."

황씨는 한풀이를 하듯 사력을 다한 끝에 우승을 일궈냈다.

황씨는 지난 1999년12월 기수 생활을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어 경주로를 떠나 장수육성목장 조련사를 하다 조교사로 돌아왔다가 지난 5월 은퇴, 승부의 세계를 떠났다.<전 스포츠조선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