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이 없는 감정 소모전이었다.
지난 10일 서울 국회의사당 본관에서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가 열렸다. 이번 국감은 선동열 야구대표팀 감독을 증인으로 채택해 엄청난 관심을 끌었다. 수많은 취재진이 몰렸고, 국감 내용은 방송으로 실시간 중계됐다.
이번 국감이 주목을 받은 이유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 엔트리 구성 당시 특정 선수에 대한 특혜 의혹 때문이었다. 최종 엔트리 발표 직후부터 시작된 논란은 대표팀이 우승을 차지하고 돌아온 후까지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특히 오지환(LG) 박해민(삼성) 등 군미필 선수들이 이번 대회 금메달로 병역 혜택을 받게 되면서, 비난 여론은 더욱 거셌다.
결국 손혜원(더불어민주당) 김수민(바른미래당) 조경태(자유한국당) 의원이 선동열 감독과 양해영 전 KBO(한국야구위원회) 사무총장이 증인으로 채택해, 현직 국가대표 감독이 국감 증인으로 국회에 서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런데, 증인 채택 과정에서 쏟아진 스포트라이트에 비해 국감에서 선동열 감독에게 던져진 국회의원들의 질문은 알맹이가 없었다. 손혜원 의원은 "유력한 두 재벌 회사의 선수 1명씩이 (대표팀에) 들어간 것이 심히 의심스럽다. 선동열 감독이 이용당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오지환과 박해민을 겨냥한듯 한 질문을 던졌다. 자생 기업인 서울 히어로즈를 제외하고, 9개 구단이 대부분 '재벌 회사'를 모기업으로 둔 것을 감안하면 불필요한 포장이다.
질문 대부분이 비슷했다. 대표팀 현장을 책임지는 감독에게 KBSA(한국야구소프트볼협회) 행정 관련해서 계속 질문 공세를 퍼붓다가, 막판에는 "사과를 하던지, 사퇴를 하시라"며 맥락 없이 호통을 치기도 했다. 특히 아시안게임 우승을 두고 "그렇게 어려운 우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성실하게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 대한 모욕이자, 야구 대표팀을 위해 힘쓴 관련 스태프들에 대한 폄하다.
김수민 의원의 퀴즈(?)도 실소를 자아냈다. 선동열 감독에게 준비한 자료를 꺼내보이며 A 선수와 B 선수의 성적을 비교해보고, 둘 중 한 선수를 선택하라고 질문을 했다. 선 감독이 "기록은 B 선수가 좋은 게 사실이지만 감독은…"이라고 답하자, 말을 끊으며 A가 오지환, B가 김선빈(KIA) 임을 알렸다. 김선빈의 성적이 객관적으로 더 좋다는 뜻인데, 문제는 해당 성적이 올 시즌이 아닌 지난해 성적이었다는 것이다. 2018년 8월에 열리는 아시안게임에 2017년도 성적으로 선수를 발탁하라는 뜻이었던 걸까.
뿐만 아니라 국감 내내 청탁이나 비리에 대한 증거 제시는 없이 감정적인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면 오히려 정치권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이미 국감 생중계를 지켜본 많은 야구팬들은 의원들의 질문 수준에 실망을 금치 못했다.
손혜원 의원은 국감이 끝난 후 자신의 SNS에 이런 글을 남겼다.'선 감독을 선의의 피해자라고 본 제가 바보였습니다. 다시 갑니다. KBO, 그리고 KBSA, 야구 적폐부터 제대로 밝혀보겠습니다. 야구팬 여러분들의 성원 부탁합니다.'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 그동안 KBO나 KBSA의 행정 절차나 야구 대표팀 구성 과정에서 옳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면, 책임질 사람은 책임을 지고 올바른 방향으로 바뀌어야 맞다. 야구계 모두가 바라는 일이다.
하지만 이번 국감은 보여주기식에 불과했다. 내용은 아무것도 없고, 호통과 실망만 남았다. 정말 한국야구의 발전을 위한 방법인지, 정치쇼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