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특히 야구에는 어떤 플레이나 상황을 전쟁 용어로 비유한 표현들이 많이 등장한다. 가령 홈런을 '대포'라고 한다든가, 외국인 선수를 '용병', 유격수를 '야전사령관'이라고 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것은 전쟁처럼 선수들간 치열한 승부욕을 통해 최선을 다한다는 걸 의미하지, 폭력을 주고받는 진짜 전쟁은 아니다.
2일 잠실에서 열린 KT 위즈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는 이런 보복성 폭력을 주고받는 볼썽사나운 플레이가 경기 내내 이어져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상대방에게 신체적 위협을 가하는 과격한 슬라이딩이 몇 차례 발생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는 다분히 감정적인 플레이였다. 너희가 위협을 해왔으니, 그에 상응하는 위협을 했을 뿐이라는 식이다. 다분히 폭력적이었다.
LG 외국인 타자 아도니스 가르시아가 1회와 3회 KT 선발 김 민의 공에 연속 몸을 맞자 인상을 구겼다. 특히 3회 머리를 향해 날아온 두 번째 사구 후에는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다음 타자 서상우가 유격수 땅볼을 치자 가르시아는 2루에서 포스아웃됐다. 이때 KT 2루수 박경수가 가르시아의 슬라이딩에 발목이 걸려 그 자리에 넘어지고 말았다.
박경수에게도 기회가 왔다. 5회 3루수 실책으로 출루한 박경수는 황재균의 안타로 2루까지 간 뒤 윤석민의 땅볼때 3루에서 포스아웃됐다. 마찬가지였다. 3루가 아닌 베이스를 이미 밟은 LG 3루수 양석환의 발목을 겨냥해 슬라이딩이 들어갔다. 양석환 역시 그 자리에 넘어져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한동안 일어서지 못했다.
슬라이딩 보복이 반복된 건 LG의 6회 공격에서다. 양석환이 1사 1,2루에서 좌전적시타를 날린 뒤 유강남의 땅볼때 2루에서 포스아웃됐다. 헌데 양석환도 깊은 슬라이딩으로 1루로 송구하는 KT 유격수 심우준을 넘어뜨렸다. 2루심은 이를 수비방해로 판단해 타자주자의 아웃까지 선언했다. 덕아웃으로 들어가는 양석환의 표정, 이를 바라보는 박경수의 표정 모두 비장해 보였다.
벤치클리어링 조짐이 보인 건 8회말 LG 공격에서도 나왔다. KT 투수 주 권이 대타 이형종에게 던진 깊숙한 몸쪽 공이 위협적이었다. 이형종은 두 차례 '브러시백 피치(brushback-pitch)'에 인상을 찌푸린 뒤 볼카운트 3B1S에서 주 권의 5구째를 공략해 중월 홈런을 터뜨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계성 주심이 LG 덕아웃으로 다가가 주의를 줬다. 이형종이 홈런을 날린 뒤 놓은 배트가 포수 근처에 떨어져 위험했다는 것이다. LG의 승리로 경기가 끝난 뒤 박용택과 박경수가 그라운드에서 잠시 대화를 하는 장면이 나왔다. 아마도 보복성 플레이를 서로 주고받은 것에 관한 얘기를 했을 것이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강정호는 지난 2015년 9월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에서 유격수 크리스 코글란의 거친 태클에 무릎을 다쳐 재활에만 약 8개월을 매달려야 했다. 그해 10월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에서는 뉴욕 메츠 루벤 테하다가 LA 다저스 체이스 어틀리의 슬라이딩에 종아리뼈가 부러진 일도 있었다. 앞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포수 버스터 포지의 부상으로 홈 충돌 방지 규정이 생겼듯,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테하다룰'을 만들어 과격한 슬라이딩을 금지시켰다. KBO리그에는 포수와 홈으로 쇄도하는 주자의 부상을 방지하는 홈 충돌 방지규정은 있고, 2루 충돌에 관해서는 아직 논의가 없다.
물론 불문율은 있다. 큰 점수차 상황에서의 도루, 홈런을 친 뒤의 과도한 세리머니, 주자들의 사인 훔치기가 나오면 즉각 '빈볼'이 나오고, 벤치클리어링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도 선수들의 신체를 담보로 한 자극적인 '보복 플레이'는 사라져야 한다. 팀을 위한다고는 하나,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팀워크도 아니고 동료애는 더더욱 아니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