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던 '미운오리새끼'가 크고 아름다운 백조로 탈바꿈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넥센 히어로즈 제리 샌즈(31)의 각성은 완벽한 동화의 재현이다. 덩달아 넥센의 포스트시즌 전망도 한층 밝아졌다.
최근 KBO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파괴력을 보여주는 타자는 홈런 1위 김재환(두산 베어스)도 아니고, KBO 사상 최초 3년 연속 40홈런을 달성한 박병호(넥센)도 아니다. 상대 투수들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인물은 고작 연봉 9만달러의 최저가 외국인 타자 샌즈다. KBO리그 투수들의 투구 스타일과 스트라이크존에 완전히 적응한 샌즈는 압도적인 장타력을 앞세워 연일 홈런포를 가동하고 있다.
시즌 22경기에서 10홈런 30타점을 쓸어 담았다. 1할대에 머물던 타율도 2할9푼3리로 경쟁력 있게 끌어올렸다. 무엇보다 이런 압도적인 결과를 최근 8경기에 집중적으로 펼쳐냈다는 점이 주목된다. 지난 22일 SK전부터 최근 8경기에서 샌즈는 타율 4할3푼3리에 8홈런 22타점을 기록 했다. OPS는 무려 1.752(장타율 1.267, 출루율 0.485)이나 된다. 경기당 홈런 1개 꼴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위력을 단기간에 쏟아낸 셈이다. 덕분에 잠시 침체기를 겪었던 넥센은 3연승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하며 정규편성 일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불과 보름 전까지만 해도 샌즈는 마치 '계륵'같은 존재였다. 4일 SK전부터 16일 롯데전까지 11경기에서 샌즈의 타율은 1할7푼9리 2홈런 8타점에 그쳤다. 이때부터 장정석 감독의 고민이 시작됐다. 시즌 막판 잔여 경기가 얼마 남지 않은데다 순위 싸움에 몰입하고 있는 팀 입장에서는 샌즈의 부활을 기다려 줄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팀내에는 이정후를 제외하고도 임병욱 고종욱 김규민에 이택근까지 외야 자원이 풍부했다. 샌즈는 18일 두산전부터 선발에서 한동안 밀려나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장 감독은 샌즈를 선발에서 제외하면서도 아쉬움과 함께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장 감독은 두산과의 18~19일 홈 2연전 때 샌즈를 선발 제외하며 "분명 선구안이 좋고, 장타력도 있는 선수다. 꾸준히 나가면 제 몫을 해줄 수 있는데, 지금 팀 상황이 여유가 없어 안타깝고 미안하다. 그러나 조만간 다시 기회를 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샌즈도 이런 팀 사정을 잘 이해하고 기다렸다. 결국 해결책은 기회가 왔을 때 스스로 실력을 증명하는 것 뿐이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프로다운 자세라고 할 수 있다. 21일 삼성전에 다시 선발라인업에 돌아와 1안타를 친 샌즈는 22일 SK전 때 시즌 3호 홈런 포함, 3타점을 기록하며 각성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때부터 자신감을 회복한 샌즈는 이후 5번의 멀티히트와 3번의 멀티홈런 경기를 기록했다. 완벽한 각성이라고 할 수 있다.
샌즈의 이러한 맹활약은 향후 넥센의 포스트시즌에 큰 희망 요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2년 만에 가을행 티켓을 자력으로 따낸 넥센은 샌즈로 인해 한층 더 막강해진 타선을 구축할 수 있게 됐다. 이는 불펜진의 위력이 강하지 않은 넥센에게는 큰 힘이다. 좀 더 공격적인 방향으로 포스트시즌 전략 운용이 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샌즈의 대각성으로 인해 넥센의 가을무대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졌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