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가 일을 냈다. 11년만에 꿈에 그리던 가을 야구를 확정지었다. 리빌딩, 체질개선을 선언하며 새롭게 사령탑에 앉은 '초보' 한용덕 감독. 장종훈 수석코치(타격코치), 송진우 투수코치, 강인권 배터리 코치 등 레전드의 귀환. 터를 다지겠다 했는데 예상 외의 성적을 거뒀다. 한화는 꾸준히 2~3위를 오갔다.
한용덕 감독은 솔직하다. 시즌 초반 2주 넘게 선발로테이션을 감독실 월간 일정표에 공개할 정도였다. 한화의 성적이 좋다보니 대전구장과 한화 원정경기에는 늘 취재진이 붐볐다. 질문도 많았다. 한 감독은 연패에 빠져 속이 상할 때도, 타선이 침묵해 배팅볼을 평소보다 훨씬 많이 던져 땀범벅이 됐을 때도 평소와 다름없이 경기전 인터뷰에 응했다.
개막 이후 한 동안 한 감독의 고민은 사소했다. 경기중 표정 관리.'선수들에게 혹시 조바심 내는 모습을 보여주지나 않을까'하는 초보 감독다운 걱정이었다.
한 감독의 어록은 이글스의 올해 여정을 보여준다. 한 감독은 자신이 뱉은 말은 비교적 지키려 노력했다. 때로는 그 고집들이 부메랑이 돼 돌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뚝심은 약진의 원동력이었다. 2018년 한화 이글스의 캐치프레이즈 '판을 흔들어라(Break the Frame)'. 다음달 열릴 포스트시즌 결과와 상관없이 이미 판은 흔들렸다. 그것도 들썩 들썩 말이다.
▶"도망다니는 투수 쓰지 않겠다"
한화는 29일 현재 74승63패로 3위다. 2위 SK 와이번스에 2.5게임차 뒤져 있고, 4위 넥센 히어로즈에 2.5게임 차 앞섰다. 만년 하위권을 벗어난 힘은 마운드에서 나왔다. 평균자책점은 전체 2위(4.86). 지난해는 5.28로 8위였다. 특히 한화가 자랑하는 불펜 평균자책점은 4.13으로 압도적인 1위다. 개막 이후 한번도 1위를 내준 적이 없다.
이태양 송은범은 리그 정상급 셋업맨으로 탈바꿈했다. 박상원은 필승조로 일취월장했다. 김민우도 부침은 있었지만 성장했다. 김성훈 등 영건들의 재발견은 팬들을 흥분시켰다. 한 감독은 "수비포지션 중 유일하게 투수만 공격을 할 수 있다. 정면승부를 하다 맞으면 다시 기회를 주겠지만 볼넷을 주고 도망다니면 바로 2군에 내리겠다"고 했다. 한화 마운드의 컬러가 단시간에 바뀔 수 있었던 이유다.
▶"방망이보다 수비가 우선"
정근우는 시즌 초반 2군에 내려갔다. 방망이 자질이야 설명이 필요없는 베테랑이었지만 무릎 수술 여파로 2루 수비가 흔들렸다. 공격은 부족했지만 수비가 나았던 18세 정은원이 시즌 초반 주전 2루수가 됐다. 이후 6월 들어 강경학이 유격수에서 2루수로 변신하며 더 나은 수비와 공격력을 한꺼번에 선보였다.
한화의 수비는 단기간 집중력이 생겼다. 수비는 전장에 나서는 투수들의 '갑옷'. 한화가 강팀으로 변한 이유 중 하나다. 내외야 수비가 모두 좋아졌다. 한화는 올해 수비 실책이 92개로 10개팀 중 4번째로 적다.
▶"설마 호잉한테도 악플이 달려요?"
5월과 6월의 약진 이후 7월부터 한화는 주춤했다. 짧은 연패와 연승을 이어갔다. 불펜 필승조를 투입하면 이기고, 그렇지 못하면 패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한 감독 스스로 "몰빵 야구"라고 했다. 한 감독의 작전에 대한 악플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시점이다.
한 감독은 "설마 호잉한테도 악플이 달리나요?"라고 취재진에 되물었다. '간혹 봤다. 특히 포털사이트 중계 좌우 응원란에서'라는 얘기가 나오자 "에이, 그래도 그건 아니지"라고 했다. 타율 3할1푼5리 30홈런 108타점 23도루, 득점권 타율 3할4푼4리. 완벽한 외야수비, 강한 어깨. 한화의 외국인 타자 제라드 호잉은 역대급 활약을 펼치고 있다.
▶"매경기 도전하는 마음으로"
시즌에 앞서 미디어 데이에서 한 감독은 "매경기 도전하는 마음으로"라고 했다. 한화는 지난 2년간 FA시장에서 철수했다. 외국인 선수는 육성형으로 뽑았다. 키버스 샘슨 70만달러, 호잉 70만달러, 제이슨 휠러 57만5000달러. 성적에 초점을 맞출 수 없는 주위 환경이었다.
6월 이후 한 감독은 몸을 더 낮췄다. "이번 주 목표도 5할 승률"이라며 매주 힘을 아끼며 장기레이스에 대비했다. 결국 7, 8월 위기를 극복했다. 아시안게임 휴식기가 큰 도움이 됐지만 보름여의 충전기는 10개 구단에 똑같이 적용됐다. 한화의 가을은 벌써 뜨겁다. 포스트시즌에서 더 높이 날아 오른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렇지 않다해도 10년 설움을 날린 엄청난 성과가 어디 가진 않는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