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백지은 기자] 박경림은 여자 방송인사에 획을 그은 캐릭터다.
데뷔부터 독특했다. 개그맨 박수홍의 팬클럽 회장을 했던 인연으로 여고시절 MBC '별이 빛나는 밤에'에 출연하며 방송계에 발을 들였다. 여고생답지 않은 걸쭉한 입담과 당당한 매너에 청취자들은 마음을 빼앗겼고, 박경림은 그 기세를 몰아 MBC 예능 프로그램까지 진출했다. 그리고 사각턱 캐릭터와 독특한 목소리로 독보적인 캐릭터를 구축하며 2001년 연예대상을 수상하는 등 레전드 방송인으로 거듭났다. 20대 여성이 연예대상을 수상한 것은 박경림이 유일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의 입지가 어느 정도였는지 쉽게 판단할 수 있을 터다. 그렇게 꾸준히 큰 기복없이 달려와 드디어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강산이 두 번은 변했을 시간 동안 결혼과 출산을 겪으면서도 톱 여성 방송인이라는 위치를 지켜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굳이 서술할 필요가 없을터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낸 박경림이지만, 그는 감사함과 보답에 초점을 맞출 뿐 숫자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큰 기복 없이 담담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프로패셔널하게 해나가고 또 앞으로의 10년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니 왜 박경림이 정상일 수밖에 없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솔직하고 당당한, 그래서 더 멋진 여자 박경림에게 데뷔 20주년을 맞은 소회를 들어봤다.
─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 숫자에 큰 의미를 두진 않는다. 하지만 20년 동안 마이크를 들 기회를 잡았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그 것을 어떻게 보답할지가 고민이다.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리스너로서 정말 외롭고 힘들 때는 누군가 내 얘기를 들어줬으며 좋겠는데 말하고자 하는 사람은 많은데 듣고자 하는 사람이 과연 많을까 하는 생각에서 잘 들어주는 사람 한명만 있어도 살아가는데 힘이 나니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 숫자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해도 감회는 남다를 것 같다.
▶ 감회는 남다르다. 마이크를 잡고 대중 앞에 나온 게 20년인거고 그전에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마이크를 잡았다. 어떻게 보면 마이크를 잡는 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이 된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 마이크를 잡으려면 환경이 바뀌면 생활이 바뀌는 거니까 계속 마이크를 잡는 걸 꿈꾸던 소녀에서 대학입학과 동시에 방송을 하게 되고 벅찰 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면서 결혼하고 아이 낳고 집중해야 하는 시기가 있다 보니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가족에게 최선을 다했던 시기엔 일이 어려웠고 그런 시기를 겪고 아이가 10세 정도 되서 새롭게 뭔가를 할 수 있게 되고 도전할 수 있게된 게 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너무 고맙다. 우리 아들도 돌잡이 때 마이크를 잡았다. 그런데 마이크를 던지더라. 그리고 청진기 골프공을 잡아서 던지더니 쌀을 씹어먹더라.
─ 인맥왕으로도 유명한데 20년 동안 업계를 떠난 사람도 계속 같이 하는 사람도 있다. 떠나 보낸 이들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 물론 나는 내 자신에게 늘 응원해주려 한다. 응원도 해주고 질책도 해주고 그렇다. 뒤돌아봤을 때 지금 하지 않는 분들은 또다른 삶을 잘 살고 계시는 거다. 필드에 있으면 좋은 거고 아니면 아닌거고는 없다. 어떤 게 누군가에게 더 큰 행복을 줄지는 모른다. 선택에 의한 거다. 삶의 소중함과 크기는 같다고 본다. 누구에게든 20년은 소중하고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그분이 살아오신 게 너무 응원해드리고 싶고 의미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나는 운도 좋았다. 감사한 마음은 있지만 더 낫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 모두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값진 것 같다.
─ 20년 동안 마이크를 잡으며 당황스러운 일들도 많았을 것 같다.
▶ 그때그때 있었을 거다. 늘 들어가기 전에 오늘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들어간다. 절대 안된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문제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괜찮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들어간다. 그리고 내가 해야하는 일이 그거다.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지만 그 순간에 이게 어떤 일인지는 알아야 할 거다. 문제가 있으면 사과도 해야 한다.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일이라 빨리 인지하고 사과나 양해를 해야 하는 건 빠를수록 좋으니까. 그런데 '절대 안 일어날거야'는 없다. 특히 영화 진행을 하다가는 말하면 안되는 스포일러가 나오기도 하고 그런다.
─ 가장 당황스러웠던 순간은 언제인가.
▶ 라디오 진행 도중 오프닝 멘트를 잘못했을 때다. 내가 잘못한거다. 제대로 대본을 살피지 못했고 그런 일이 있었더라도 더 노련했다면 순간적으로 멘트를 빼고 할 수 있었을 건데 거기에 대해서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인식하는 순간 빠르게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인지하는 순간 심장이 떨렸다. 그래서 첫 곡 나가고 바로 사과했다. 그걸 느낀다는 건 분명한 잘못이다.
─ 사실 제작진이나 다른 사람 탓을 할 수도 있는 문제인데 자신의 것으로 모든 걸 받아들이는 것 같다.
▶ 나도 옛날엔 남탓 많이 했다. 그런데 이걸 그냥 읽는 역할이라 합리화 하기에는 그러면 안되는 거다. DJ로 마이크를 잡고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느낀다면 당연히 미리미리 해야한다. 지금와서도 그런 생각이다. 미리 안한 내 잘못이다. 누굴 탓하겠나. 내가 내 대본을 미리 안봤는데. 그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내 잘못인 것 같다.
─ 박경림의 목표는 무엇인가.
▶ 옛날에는 내 이름을 건 토크쇼라고 했는데 지금은 오랫동안 마이크 잡고 많은 사람 만났으면 한다. 많은 사람들의 삶 속에 함께 하며 많은 이야기 들으며 함께하는 게 내 목표다. 송해 선생님 같이 되면 완전히 영광이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정말 어려운 거다. 나에게 기회가 계속 주어진다는 게 쉬운 게 아니니까 열심히 해야 한다. 하늘은 공평해서 준비한 사람한테 기회를 준다. 지금 10년 준비해야 다음 10년이 있다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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