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앞두고 많이 주고받는 덕담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다. 하지만, 풍요를 누리며 일 년 중 가장 행복해야 하는 추석 명절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들이 있다. 기름진 명절 음식과 반가운 이들과의 술자리, 음식을 장만하고 치우는 가사노동, 막히는 도로를 달리는 장거리 운전, 벌초와 성묘를 가서 부딪치는 뱀과 독충, 독초 등이다. 전문가의 조언으로 벌초나 성묘 중 만날 수 있는 위험을 피하는 방법과 몸에 무리를 주지 않는 장거리 운전법에 대해 알아본다.이규복 기자 kblee341@sportschosun.com
민족의 명절 추석을 앞두고 본격적인 벌초와 성묘 시즌이 시작됐다. 산림청은 추석을 맞아 벌초객과 성묘객의 편의를 위해 산림 내 임도(산림도로)를 다음달 7일까지 개방한다. 강원도 역시 다음달 12일까지 산림도로를 개방할 예정이다.
성묘를 갔다가 벌과 독사, 진드기에 물리는 사고가 매년 빈발한다.
소방청은 지난 9일 본격적인 벌초 시즌 시작과 함께 벌 쏘임 주의보를 발령하고 "벌초, 제초작업, 성묘 등을 할 때 말벌 공격에 주의하라"고 밝혔다. 벌 쏘임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올해에만 벌써 5명이다.
벌에 쏘이는 사고는 해마다 벌초와 성묘가 집중되는 9월에 가장 많다. 지난해의 경우 9월에 3881건으로 가장 많았고, 8월 3226건, 7월 2981건, 10월 1309건 등의 순이었다.
강원도소방본부가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119 출동현황을 분석한 결과 8~9월 중 벌초 또는 성묘를 하다가 130명이 벌에 쏘였고, 이 중 3명이 숨졌다.
일반적으로 나무에 집을 짓는 꿀벌과 달리 말벌은 땅속에도 집을 짓기 때문에 눈으로 찾기가 어렵다. 따라서 성묘와 벌초를 갈 계획이 있는 사람은 이에 대해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벌침 빼려다 독액주머니 건드리면 더 위험
벌에 쏘이면 국소적인 반응으로 쏘인 부위가 통증과 함께 붓는다. 여러 차례 벌에 쏘이면 전신 독성반응도 나타날 수 있는데 구역감과 구토, 설사, 어지럼증 등이 대표적인 증상이다.
일부 환자의 경우 '아나필락시스 반응'으로 혈압이 낮아지고, 호흡이 힘들어지면서 복통이 발생하며, 심한 경우 의식 저하 및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장기육 서울성모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벌에 쏘이면 독침을 바로 제거해야 한다"며 "다만, 손으로 독침을 잡아 빼려고 하다가 오히려 독액주머니를 짜서 남아있던 독액이 몸에 퍼지는 경우가 적잖으니, 신용카드나 가위 같은 것으로 살살 긁어 빼낸 후 비누로 깨끗이 씻어 감염을 예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벌에 쏘이지 않으려면 벌을 유인할 만한 향수, 화장품, 요란한 색깔의 의복은 입지 말고, 벌이 가까이 접근하면 벌이 놀라지 않도록 천천히 낮은 자세를 취하면서 피해야 한다.
벌 독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 사람은 벌에 쏘였을 때를 대비해 벌초나 성묘를 갈 때 미리 항히스타민제와 에피네프린 자동주사약, 지혈대 같은 응급약을 준비해 가져가는 게 바람직하다.
다만, 에피네프린 자동주사약은 심한 알레르기로 아나필락시스 상태가 와서 매우 위험할 때를 제외하고는 사용하면 안 된다.
임지용 서울성모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벌에 쏘이면 근처 가게나 가정집에서 얼음을 얻어 비닐 주머니에 집어넣은 뒤 물린 부위에 놓으라"며 "그러면 부종이 줄어들고 독액의 체내 흡수를 감소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임지용 교수는 이어 "상처에 침을 바르면 구강 내 세균이 감염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피하고, 벌에 쏘이고 나서 전신 반응이나 알러지 반응이 나타나면 즉시 가까운 응급실에 가서 치료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추석 뱀'이 연중 가장 독성 강하고 무서워
뱀은 가을에 번식기에 접어들기 때문에 다른 계절보다 예민해져 있고 독성도 훨씬 강해진다. 추석 전후에 독사에 물리면 훨씬 치명적일 수 있다.
곽영호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뱀에 물렸을 때 흔히 하는 실수는 뱀을 잡으려고 하거나 차후 독사 여부를 확인하겠다면 사진을 찍으려고 시도하다가 다시 물리는 것"이라며 "어느 뱀에 물렸는지 확인하지 않아도 상처의 모양과 증상으로 독사 여부를 알 수 있으므로 물린 뱀의 종류를 확인하려 하지 말라"고 말했다.
독사에 물린 부위는 부어오르고 피가 나며, 어지럽고, 토하거나 메슥거리며 시야가 흐려지기도 한다. 독사에 물린 뒤에 흥분해서 움직이면 독이 혈액 안에서 더 빨리 퍼지기 때문에, 마음을 안정시키고 일단 물린 장소를 벗어난 후 눕거나 앉아서 응급처치를 해야 한다.
가장 좋은 응급처치는 물린 곳에서 5~10㎝ 정도 심장에 가까운 쪽을 넓은 끈이나 고무줄, 손수건으로 묶어 독이 더 이상 퍼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저릴 정도로 너무 세게 묶는 것은 좋지 않으며 손가락 2개 정도가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묶어 준다.
물린 위치를 심장보다 아래쪽에 두면 심장으로 독이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있지만, 물린 부위가 더 부어오를 수도 있다. 반면, 물린 부위를 심장 보다 높게 위치시키면 부기가 덜 할 수 있지만, 독이 더 빨리 퍼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물린 부위의 수평을 유지하면서 즉시 응급실에 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입으로 독을 빨아내거나 칼로 상처를 도려내는 것이 응급처치로 좋다는 주장이 있지만 과학적인 근거가 없고, 효과도 증명된 바 없다.
우리나라에서 독사는 살무사 3종과 유혈목이 1종 등 총 4종이 알려져 있으며, 숫자가 많은 살무사의 경우 효과적인 독 중화제가 있다. 따라서 스스로 독을 빼내려고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가능한 빨리 응급실에 가는 게 최선이다.
◇진드기 통한 쯔쯔가무시 전염도 주의
벌초나 성묘 시 주의해야 할 또 하나의 위험요인은 들쥐의 오물과 진드기 등 통해 발생하는 '유행성출혈열', '렙토스피라', '쯔쯔가무시' 등 전염성 질환이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5일 쯔쯔가무시증과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 렙토스피라증, 신증후군출혈열 등 열성 감염병이 급증할 수 있다며 야외활동 시 주의를 당부했다.
쯔쯔가무시증은 전체 환자의 90% 이상이 가을철에 발생한다. 지난해에는 1만528명의 환자가 보고됐고, 올해는 지난달까지 1364명이 발생해 이 가운데 8명이 사망했다.
쯔쯔가무시증은 쯔쯔가무시균에 감염된 털진드기 유충에 물릴 때 발생한다. 고열, 오한, 근육통, 복통, 인후염, 가피, 발진 등이 주요 증상이다. 야외활동 후 감기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거나 가피(털진드기 유충에 물린 부위에 나타나는 검은 딱지)가 있을 경우 즉시 병원에 가야 한다.
예방을 위해서는 긴 소매 상의와 긴바지를 착용하고 모자, 목수건, 토시, 장갑, 양말, 장화 등으로 피부 노출을 최소화해야 한다. 풀 위에 옷을 벗어두거나 눕지 않고, 야외활동 후에는 머리카락, 귀 주변, 팔 아래, 허리, 무릎 뒤, 다리 사이 등에 진드기가 붙어 있는지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쥐 등 설치류를 통해 전파되는 렙토스피라증은 렙토스피라균에 감염된 동물의 소변에 노출될 때 발생하고 고열과 근육통, 두통, 설사, 발진, 결막충혈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신증후군출혈열 역시 한탄·서울바이러스에 감염된 설치류가 배출한 분변, 오줌, 타액이 사람의 호흡기로 들어가면서 발생한다. 발열, 오한, 근육통, 두통, 출혈소견, 소변량 감소 등이 주요 증상이다.
벌초나 성묘 후 귀가하면 바로 손 소독 및 전신 목욕을 실시하고 옷은 모두 세탁해야 한다. 만약 이후 1~3주 사이에 고열, 오한, 두통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 전염성 질환을 의심하고 즉시 병원을 방문하는 것이 좋다.
◇장거리 운전, 올바른 자세와 스트레칭 필수
이미 주말마다 벌초와 성묘객으로 고속도로는 만원이다. 벌초나 성묘를 위해서도 '장거리 운전'은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 중 하나다.
좁은 차 안에서 같은 자세로 장시간 앉아 있어야 하는데, 잘못된 자세 및 지체에 따른 스트레스 누적으로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특히,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이동준 강북힘찬병원 원장(신경외과 전문의)은 "허리는 누워 있을 때보다 앉아 있을 때 관절에 더 많은 부담이 전달되며, 장거리 운전을 하면 움직임이 제한되다 보니 혈액순환도 원활하지 않아 허리 통증이 심해질 수 있다"며 "평소 허리가 약한 사람은 척추에 무리가 가해지면서 허리통증이 심해질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통증 예방을 위해서는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바른 자세가 우선이다. 등받이를 과도하게 뒤로 젖힌 자세는 처음에는 편하게 느껴지지만, 허리를 받쳐주지 못해 요통이 생길 수 있다. 엉덩이와 등이 시트에 밀착되게 앉은 채로, 등받이의 각도는 100~110도 정도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쿠션에 허리를 받치는 것도 척추의 자연스러운 S자 굴곡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뒷주머니에 소지품이 있으면 허리가 틀어지면서 통증이 발생할 수 있으니 뒷주머니를 비우는 것도 필수다.
장거리 운전을 하다 보면 목과 어깨 통증도 자주 발생한다. 목과 어깨 주위의 근육은 부드럽고 탄력성이 좋은 근육으로 형성돼 있는데, 이런 근육이 오랜 시간 고정된 자세로 긴장하면 수축되며 통증을 일으킬 수 있다.
휴게소에서 쉴 때마다 '목 체조'를 하면 통증이 완화된다. 시선을 아래로 두고 머리를 45도 방향으로 숙인 채, 머리 뒤에 손을 대고 아래 방향으로 누르는 동작을 왼쪽과 오른쪽 방향으로 번갈아하면 된다.
장시간 차를 타고 있으면 운전자와 동승자 모두 비행기의 '이코노미 증후군'과 유사한 혈액순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송미연 강동경희대병원 한방재활의학과 교수는 "장시간 좁은 좌석에서 다리를 못 움직이면 다리 정맥의 혈액순환이 저하되고 정체된다"며 "혈액이 정체되면 혈액이 응고돼 혈전이 만들어지는데 한번 혈전이 생기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고 말했다. 심하면 혈전이 폐동맥을 막아 치명적인 폐색전증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 같은 위험을 피하려면 수시로 발뒤꿈치를 들어 올려 종아리 근육을 수축시켜 줘야 한다. 이 동작을 반복하면 다리에 있는 정맥피가 순환되어 혈전을 막을 수 있다.
목, 어깨 돌리기, 오른손으로 벨트고리를 잡고 허리 돌리기, 두팔 뻗기, 발목 펴기와 돌리기도 원활한 혈행에 도움이 된다. 눈 주위를 지압하거나 창문을 열고 심호흡하는 것도 좋다. 또, 2시간마다 휴게소에 들러 스트레칭을 하는 것도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