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FA(자유계약선수) 몸값 거품 제거를 위한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야구장 관중석은 썰렁한데 밖이 시끄럽다. 정운찬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는 12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선수 선발 논란에 관해 사과했다.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은 금메달을 목에 걸고 왔지만, 석연치 않은 선수 선발 과정과 선수들의 병역 기피 논란에 휘말리며 환영받지 못했다. 아시안게임 이후 야구장을 찾는 팬들의 발길이 줄고있다. 이곳저곳에서 비난이 쏟아지자 정 총재가 대중 앞에 섰다.
이 자리에서 함께 나온 얘기가 외국인 선수 몸값 제한이다. KBO는 11일 이사회를 열어 외국인 선수 영입 규정을 변경했다. 리그 판도를 뒤흔들 수도 있는 제도 변화다.
내용은 이렇다. 앞으로 새로 외국인 선수를 데려올 때는 계약금, 연봉, 인센티브 등 모든 걸 포함해 100만달러 이상을 주면 안된다. 외국인 선수 의존도가 높다보니 그동안 구단들은 경쟁력 있는 선수를 영입하는데 엄청난 돈을 지출해 왔다. 선수 1명에게 연간 30억원 이상을 쓴 구단도 있었다. 선수 풀은 한정돼 있고 영입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몸값이 지속적으로 올라갔다. 고비용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목적으로 연봉 상한선 도입이 결정된 것이다.
외국인 선수들의 눈높이가 높아져, 100만달러만 받고 한국에 올 수준급 선수는 사실상 없다. 성적을 내고 싶다면, 열심히 발품을 팔아 좋은 외국인 선수를 데려오라는 뜻이다. 그래서 한 시즌 후 이 선수들과의 다년 계약을 인정하는 메리트를 주기로 했다.
취지는 매우 좋다. 기형적인 선수 몸값 인플레는 하루 빨리 해결돼야 하는 문제였다. 규정 위반 적발시 신인 1차 지명권 박탈, 제제금 10억원 부과 등 큰 징계를 주기로 하는 등 환경 변화에 대한 의지가 읽힌다. 정 총재는 이를 두고 "자본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가끔 비자본주의적인 방법도 써야 한다"며 경제학자다운 코멘트를 했다.
그런데 몸값 거품의 화살을 외국인 선수에게만 돌려도 되는 걸까. FA들의 몸값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4년 150억원, 4년 115억원을 받는 선수가 나온다. 이제 4년 기준 100억원은 큰 금액으로 다가오지 않을 정도다. 발표 금액뿐 아니라 뒤로 오가는 돈이 더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비밀이 됐다.
그렇다고 천문학적인 돈을 받는 선수들이 상응하는 경기력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분명 저연봉 선수들에 비해 뛰어난 기량을 갖고 있지만, 수십억원의 연봉을 받는 선수들의 퍼포먼스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타율 3할5푼 이상을 기록하며 홈런 40~50개를 치는 것도 아니고, 20승 가까운 피칭을 하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몸값이 비싼 선수를 보유한 팀이 좋은 성적을 내지도 못하는 사례가 많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일반인들이 출전한 상대국 투수의 공도 제대로 못치고, 타자들에게 홈런을 맞으며 질타를 당했다.
외국인 선수 몸값 지출도 힘들지만, 구단들은 고액 FA 계약에 고통받고 있다. 안잡으면 그만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댓글 여론에 민감하게 휘둘리는 프로 구단들은 팬들의 엄청난 비난을 견뎌내지 못한다. 그렇게 자신들이 서로의 살을 깎아먹는 중이다.
외국인 선수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도 상식적이지 못한 게, 외국인 선수 몸값이 올라간 것도 구단 스스로 만들어낸 일이기 때문이다. 실력이 떨어지는 국내 선수에게 수십억원을 안길 바에는, 확실히 자기 역할을 하는 외국인 선수에게 투자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린 구단들이 점점 늘어났기 때문이다.
문제를 발견하고 알았으면 적극적인 치료를 해야한다. 외국인 선수 몸값 제한, 분명히 필요하지만 이는 일부다. 서민 팬들에게 괴리감만 안겨주는 비상식적 FA 계약도 상한선을 만드는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지금 이와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졌을 때 칼을 대야한다. 한 번 수술대에 올랐을 때, 완벽히 병의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 또 곪아터질 잠재 요인을 남겨두면 안된다.
정 총재의 결단이 중요하다. 이런 어려운 결정을 하라고 커미셔너 자리에 모신 것이다. "선수협과 얘기를 해보겠다"며 눈치 보는 발언을 하라고 많은 연봉을 주는 게 아니다. 외국인 선수는 그저 '용병'이고, 국내 선수들은 '내 야구 후배'이기에 아껴주고 싶은 야구인들의 마음은 알겠지만, 리그가 건강해지려면 선-후배 사이의 정은 잠시 감춰둬야 한다. KBO리그 연봉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실력을 키워 메이저리그로 진출하면 된다. 또, 100억원 몸값이 50억원으로 준다고 해도 일반 팬들이 보기에는 엄청난 거액이다. 선수들을 측은하게 바라볼 사람은 거의 없다.
지나치게 높은 계약금 비율을 줄이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치열하게 뛰어야 할 선수들이, 현실에 안주해 나태한 플레이를 한다면, 이를 지켜보는 구단과 팬 모두 속이 터진다.
스포츠1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