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한화 이글스하면 김태균(36)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았다. 등번호 '52번'은 자연스럽게 이글스 중심타자를 의미했다. 팀이 암흑기를 지날 때, 한화팬들은 고군분투하는 김태균을 보면서 안쓰러워했다. 한화 감독을 지낸 한 야구인은 "선두타자로 나가 출루를 해도 후속타가 안 터져 혼자 10분 넘게 그라운드에 있다가 들어올 때가 많았다. 상대 투수가 김태균만 피해가면 된다는 식으로 집중견제를 하니 어려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고 했다. 팀 성적이 바닥을 때릴 때, 한화는 김태균의 팀이었다.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한 김태균을 데려오겠다고, 구단주가 중인환시에 약속을 할만큼 말이다.
그런테 팀이 11년 만에 가을야구를 바라보며 피말리는 순위경쟁을 펼치고 있는데, 김태균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시즌 내내 부상으로 출전 경기수도 적었지만, 가장 중요한 시기에 이름값 몸값을 못하고 있다.
3연패중이던 한화는 11일 대구 원정경기에서 삼성 라이온즈에 8대7 역전승을 거뒀다. 연장 12회 치열한 승부끝에 어렵게 얻어낸 결과였다. 정근우가 추격의 4점 홈런을 때렸고, 이성열이 동점 3점 홈런. 제라드 호잉이 연장 12회초 결승 1점 홈런을 터트렸다. 6회 1사후부터 불펜투수 7명을 가동하는 총력전을 펼쳐 승리를 따냈다.
하지만 김태균은 끝내 침묵했다. 6번-지명타자로 출전해 6타수 무안타. 정규이닝 동안 내야를 벗어난 타구가 없었다. 상대 수비 실책으로 딱 한 번 출루한 게 전부였다. 승부가 연장으로 넘어간 뒤 맞은 두 타석에선, 연속 삼진으로 돌아섰다. 단순한 타격 부진을 넘어 의욕상실까지 의심하게 하는 무기력한 장면을 연출했다.
한용덕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에서 "연패중이었지만 고참들을 중심으로 선수단이 하나가 되어 하고자하는 의욕이 강했다"고 했다. 실제로 이날 베테랑 선수들이 좋은 활약을 해줬다. 한 감독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김태균에게는 아픈 메시지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무기력한 타격은 이날 삼성전에 한정된 게 아니다. 지난 7일 KT 위즈전부터 11일 경기까지 4경기에서 16타수 1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이 기간에 4사구 하나없이 삼진 6개를 당했다. 홈런 생산능력은 아쉬워도 컨택트 능력이 뛰어나고, 선구안이 좋은 '김태균'은 없었다.
김태균은 올 시즌 부상으로 세 차례 1군 등록이 말소돼 80일을 비웠다. 58경기에 출전해 타율 3할2리(212타수 64안타), 9홈런, 28타점. 14시즌 연속 세 자릿수 안타는 어려워 보인다. 김태균은 2015년 말 다시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어 4년-84억원에 재계약했다.
그가 전력에서 빠지고 부진에서 헤매는 동안 송광민 호잉 이성열 강경학 등이 좋은 활약을 해준 덕분에, 가을야구 문턱까지 올 수 있었다. 이제 한화가 김태균의 팀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김태균의 한화'가 아닌 '한화의 김태균'을 보고싶다.
대구=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