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괴물'이었다.
황희찬(22·잘츠부르크)의 잠재력은 어마어마했다. 고교 시절 '동급 최강'이었다. 키(1m77)는 크지 않다. 그러나 스피드와 파워, 기술은 탈아시아급이었다.
'노력파'이기도 했다. 대표팀에 발탁된 뒤에도 자기개발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비 시즌 때는 '프리스타일 축구 고수'를 찾아가 새 기술을 습득하기도 했다. 천재성과 노력이 겸비된 선수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2년 전이었다. 스무살 때 출전한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은 그에게 작은 무대처럼 보였다. 파워는 2~3살 많은 형들과 맞붙어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청량음료 같은 시원한 돌파와 '황소'같은 저돌적 움직임은 역대 한국축구에서 볼 수 없는 유형이었다. 손흥민(26·토트넘)에 이어 '빅 스타'가 될 거라는 데 이견은 없었다.
예상대로였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 주가가 치솟았다. 유럽 명문팀의 러브콜이 쇄도했다. 토트넘과 리버풀 등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독일, 스페인 팀들도 황희찬 영입에 관심을 드러냈다.
러시아월드컵은 팬들도, 본인도 기대가 컸다. 그의 당돌함이라면 떨지 않고 첫 월드컵일지라도 맹활약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스웨덴전과 멕시코전에서 결정적 득점찬스를 수차례 날려버렸다. 독일전에선 후반 11분 교체투입된 뒤 23분 만에 다시 교체되는 굴욕을 맛봤다.
당시 평가는 이랬다. "아직 스무살밖에 되지 않았다. 유럽 수비수들을 달고 돌파를 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 아니냐. 첫 월드컵 경험이 훗날 약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축구인들이 고개를 숙인 황희찬을 감싸 안았다. 맞는 말이긴 했다. 황희찬에게는 아직 폭발시키지 못한 잠재력이 꿈틀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2개월이 흘렀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 출전한 황희찬은 여전히 교착상태다. 월드컵, 올림픽보다 상대도 약하고 작은 무대지만 황희찬에게는 버거운 모습이다. 조별리그 세 경기에서 167분을 뛰며 1골밖에 넣지 못했다. 뚝 떨어진 골 결정력도 그렇지만 플레이가 너무 투박하다. 기존 선수들과 조직력을 향상시킬 시간이 부족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잦은 패스미스에다 세밀함을 떨어뜨리는 공격작업은 팀에 '독'이 되고 있다. 월드컵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단계 성숙된 플레이를 기대했던 김학범 감독에게 스스로 고민만 안겨준 꼴이 됐다.
스스로 논란도 키웠다. 말레이시아전(0대1 패)이 끝난 뒤 상대 선수와 악수하지 않고 퇴장했던 프로답지 않은 행동과 키르기스스탄전에서 시도한 뜬금 없는 개인기 실패는 팬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경기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아무리 한국 축구를 이끌어갈 미래의 스타라도 비난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냉혹한 현실의 무게를 느꼈을 것이다. 월드컵에선 실수가 잦았던 장현수에게 가려졌을 뿐 황희찬도 비난을 피할 상황은 아니었다.
다행스러운 건 경기력 부진에 대한 인식을 스스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황희찬은 "정신력이 흔들리는 건 없다. A대표팀에서 그런 점을 배웠다. 당연히 이겨내야 한다. 경기력으로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비난을 받을 수 있다. 감내하고 이겨내야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말레이시아전에선 성숙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배웠다"고 덧붙였다.
선수가 매 경기 잘 할 수는 없다. 사이클이 있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축구는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다. 그것을 기대하는 것도 웃긴 일이긴 하다. 그러나 황희찬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가진 능력을 그라운드에서 100% 쏟아부어야 할 일이 황희찬의 몫이다. 욕심을 내려놓고 희생하는 황희찬을 보고싶다. "희찬이 사전에 요령은 없다. 국가대표 사명감도 투철하다. 경기 중 탈진하더라도 끝까지 열심히 뛴다"는 부친 황원경씨의 말이 생각나는 시점이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