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남자농구 대표팀 '허재호'의 필리핀전 구상과 전략이 수정돼야 할 것 같다. '경계대상 1호'인 조던 클락슨이 여전히 강력했지만, 필리핀 농구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다른 선수들의 기량과 팀 조직력이 예상보다 뛰어나다. 문제는 갈수록 더 좋아지고 있다는 데 있다. 쉽게 말해 필리핀이 엄청 세다. '허재호'에 비상등이 켜질 만큼.
지난 21일 오후 자카르타 GBK 농구장은 모처럼 관중과 취재진이 폭발했다. 중국과 필리핀의 맞대결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중국 관중과 취재진은 원래부터 많다. 어딜 가든지 일단 기본 이상은 채우는 편인데, 이날은 평소보다 훨씬 많았다. 아무래도 필리핀이 메달 다툼의 경쟁 상대인데다, 그 팀에 NBA 현역 스타플레이어인 조던 클락슨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경기는 만원 관중과 취재진을 열광시켰다. 치열한 명승부가 펼쳐졌는데, 양팀의 기량은 매우 뛰어났다. 중국은 예상대로 2m17의 장신 저우치(25득점)와 2m14의 왕제린(13득점)이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이에 맞서는 필리핀의 힘도 예상보다 훨씬 더 강했다. 기본적으로 높이에서 뒤지지만 파워와 조직력에서는 전혀 밀리지 않았다. 이날 필리핀은 리바운드에서 47-49로 중국에 불과 2개 밖에 뒤지지 않았다. 오히려 공격 리바운드는 16-14로 중국을 이겼다. 3점슛도 위력적이었다. 이날 총 11개를 성공했는데, 성공률 32%였다.
무엇보다 클락슨 말고도 특별히 조심해야 할 선수들이 눈에 띄었다. 스탠리 프링글(31)이다. 이날 프링글은 29분13초를 뛰며 3점슛 2개 포함, 14득점에 2어시스트, 4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미국계 혼혈인 프링글은 신장이 1m85인데 특유의 탄력과 파워를 앞세워 앞선부터 골밑까지 자유자재로 헤집고 다녔다. KBL에서 보면 김영기 前 총재가 주구장창 찾아 헤매던 '기술이 뛰어난 단신 외국인 선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개인기와 슛, 돌파 등 못하는 게 없었다.
압권은 78-77로 앞서던 4쿼터 종료 1분23초전이었다. 저돌적인 개인돌파로 중국의 골밑으로 치고 들어가더니 2m10이 넘는 장신 더블 포스트 저우치와 왕제린을 앞에 두고 기술적으로 레이업 슛을 성공했다. 필리핀이 거의 이길 뻔한 순간이었다. 이후 1분을 버티지 못하며 필리핀이 결국 80대82로 졌지만, 앞으로 필리핀을 상대해야 하는 한국 입장에서는 간담이 서늘해질 법한 장면이었다.
그간 허 감독과 선수들은 클락슨에 대해서 주로 경계를 해왔다. 허 감독은 "하여튼 그 선수(클락슨)를 조직력으로 잘 막아보겠다"며 전의를 불태웠고, 대표팀 가드 김선형도 "클락슨이 뛰어난 선수지만, 우리는 5명으로 이겨보겠다"면서 '조직력'으로 봉쇄 해법을 찾겠다고 했다.
허 감독이나 김선형의 對필리핀전 전략은 결국 '클락슨 개인'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셈이다. 클락슨이 분명 최고 기량을 가진 스타지만, 필리핀에는 그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게 중국전을 통해 확실히 드러났다. 프링글도 한국 가드들이 힘과 기술면에서 1대1로 막기는 힘들 듯 하다. 여기에 더불어 크리스티안 스탠하딩어(18득점, 8리바운드) 또한 절대 만만히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