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한국시각) 인도네시아 팔렘방의 자카바링 스포츠시티 슈팅레인지에서 열린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10m 공기권총 결선. 진종오(39·KT)는 좀처럼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평소 모습과 많이 달랐다. 탈락자를 가리는 엘리미네이션 라운드. 6시리즈에서 진종오는 178.4점을 쏴 우자위(중국)와 공동 4위가 됐고, 탈락자를 가리는 슛오프가 진행됐다. 신중하게 방아쇠를 당긴 진종오가 기록한 점수는 9.6점, 우자위에 밀린 5위였다. '사격의 신' 진종오가 유일하게 이루지 못한 아시안게임 개인전 금메달 꿈이 또다시 무너졌다.
▶돌발변수에 흔들린 영점
생각하지 못한 변수가 생겼다. 결선 시작 전 시험사격 과정에서 전자표적지에 마크가 이뤄지지 않은 것. 진종오는 심판을 불러 상황을 설명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 본 사격 관계자는 "진종오는 전자표적지에 마크가 안됐다며 심판에게 확인을 요청했으나, 심판의 표적지엔 마크가 되어 있다며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항의 뒤 시험사격 부여를 두고 경기 운영진의 혼선이 빚어지며 시간이 지체된 것도 진종오의 경기 리듬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사격은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예민한 종목이다.
이번 아시안게임은 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4년마다 열리는 아시안게임이기에 다음 대회 출전을 기약할 수 없다. 사격은 다른 종목에 비해 오랜기간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는 종목이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과 경쟁 구도를 외면할 수 없었다. 진종오는 대회를 앞두고 "내겐 마지막 대회가 아닐까 싶다. 4년 뒤면 40대 중반이다.(웃음)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마지막 남은 목표인 아시안게임 개인전 금메달을 열망했다.
경기 뒤 사격 관계자는 "진종오가 (5위 확정 뒤)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눈물을 보이더라"고 안타까워했다.
▶다 이룬 진종오, AG 일발승부도 불발
진종오는 세계 최고의 사수, '권총 황제'로 불린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50m 권총 금, 10m 공기권총 은), 2012년 런던올림픽(50m 권총 금, 10m 공기권총 금), 2016년 리우올림픽(50m 권총 금)에서 대회 사상 첫 50m 권총 3연패를 달성했다, 권총 부문 개인 최다 금메달(4개)의 역사를 썼다. 월드컵파이널(금1 동1), 세계선수권(금3 은2 동2), 아시아선수권(금3 은3 동1) 등 최고 무대에서 모두 최고 자리에 올랐다. 지난 2009년 창원월드컵에서 10m 공기권총(594점), 2013년 그라나다월드컵에서 50m 권총(200.7점)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그런데 아시안게임과는 유독 연이 없었다. 지난 2002년 부산대회부터 2014년 인천대회까지 4차례 출전해 단체전에서 3개의 금메달을 땄을 뿐, 개인전에선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에 그쳤다. 이번 아시안게임에는 그동안 강세를 보였던 50m 종목이 정식 종목에서 제외되면서 10m 공기권총만 출전했다. 10m 혼성 대표팀 선발전에선 탈락했다. 진종오는 승부사 답게 정면승부를 다짐했지만, 또다시 고개를 떨궜다.
▶'다시 4년 더' 외칠까
진종오가 다시 한 번 아시안게임에 도전장을 내밀 수 있을까. 실력에는 이견이 없다.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후배들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강호들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았다. 앞으로 4년 동안 기량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충분히 다시 한번 금메달 도전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미 올림픽에서 모든 것을 이룬 진종오다. 아시안게임 하나 만을 바라보고 4년을 버틸 수 있을 지 불확실하다.
2020년 도쿄올림픽이 다음 아시안게임에서 또 한 번의 도전에 임하는 발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진종오는 지난 리우올림픽에서 50m 권총 3연패를 달성한 뒤 "도쿄대회에서 4연패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해당 종목이 없어져 4연패 목표가 사라졌다. 10m 개인전 출전의 길이 열려 있지만 3연패를 이룬 50m에 비해 동기부여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진종오는 지난 2014년 인천대회에서 금메달에 실패한 뒤 "은퇴하지 말라는 계시로 알겠다"며 도전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4년 동안 칼을 갈았지만 이번에는 메달권에도 들지 못했다. 과연 진종오는 다시 4년 뒤를 바라볼까.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