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과 천국을 오갔다. 김학범호가 우여곡절 끝에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대표팀은 20일 인도네시아 반둥의 시 잘락 하루팟 스타디움에서 열린 키르기스스탄과의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조별리그 E조 최종전에서 1대0으로 승리했다. 위기에 몰렸던 한국은 2승1패로 조 2위를 기록. 가까스로 16강행 티켓을 따냈다. 환희와 쇼크를 오가는 다사다난한 조별리그였다.
출발이 좋았다. 김학범호는 지난 15일 바레인을 6대0으로 완파했다. 상대 밀집 수비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전반 17분만에 황의조가 선제골을 터뜨렸다. 한국은 끝까지 공격 라인을 내리지 않았다. 전반에만 5골이 터졌고, 황의조는 43분 만에 해트트릭을 완성했다. 김학범 감독이 강조한 '공격적 스리백'은 성공적이었다. 후반 추가 시간 황희찬의 프리킥 골까지 나오면서 완승을 거뒀다. 축구팬들은 압도적인 전력에 찬사를 보냈다. '황의조 인맥 논란', '스리백의 성공 여부' 등 그간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하지만 금메달을 향한 길은 쉽지 않았다. 지난 17일 말레이시아에 일격을 당했다. 전반 5분 만에 골을 내주더니, 끝내 1대2로 패했다.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김 감독은 야심차게 두 번째 경기에서 로테이션을 가동했다. 선발 명단 6명을 바꿨다. 골키퍼도 조현우 대신 송범근을 택했다. 빡빡한 일정을 견디기 위한 비책이었다. 그러나 악수가 됐다. 선발 출전한 선수들의 발이 맞지 않았다. 수비도 흔들렸다. 상대가 끝까지 밀집 수비를 하니 이겨낼 방법이 없었다. '반둥 쇼크'였다.
경기 후 분위기가 처질 수밖에 없었다. 믹스트존에서 인터뷰에 응한 몇몇 선수들은 고개를 숙였다. 모두가 "방심했다"고 입을 모았다. 김 감독은 "로테이션을 너무 일찍 생각했다. 감독의 실수다"라고 했다. 주장 손흥민은 후배들의 정신을 일깨우고자 미팅에서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미팅 후에는 선수단이 분위기 전환에 나섰다. 쇼크를 이겨내고 훈련에서 웃음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자처한 가시밭길을 이겨낸다는 의지를 보였다.
키르기스스탄전은 물러설 곳 없는 최종전이었다. 시작과 함께 몰아붙였다. 2차전에 비해 비교적 패스가 잘 이루어졌다. 황인범 김문환 나상호가 끊임 없이 오른쪽을 공략했다. 하지만 마무리가 아쉬웠다. 전방에서 좋은 기회에서 정확한 슈팅이 나오지 않았다. 수비 라인이 깊을 때 나온 중거리 슛도 부정확했다. 전반전에 14개의 슈팅을 날렸지만, 유효 슈팅은 2개 뿐이었다.
흐름은 답답했다. 후반전 시작과 함께 황의조 대신 황희찬을 투입하며, 반전을 노렸다. 양쪽 측면을 꾸준히 활용했다. 답답했던 공격을 풀어준 건 세트피스였다. 후반 18분 왼쪽에서 얻은 코너킥 기회. 장윤호가 오른발로 크로스를 올렸다. 이 공이 중앙의 밀집 지역을 지나쳤다. 골문 오른쪽에 위치한 손흥민이 오른발 논스톱 슈팅으로 골망을 갈랐다. 손흥민의 대회 첫 골. 대표팀은 이 골을 기점으로 살아나기 시작했다. 끝까지 상대를 강하게 압박했다. 끝내 1점차의 승리. 1골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한국은 '반둥 쇼크'로 물들었던 분위기를 떨쳐냈다.반둥(인도네시아)=선수민 기자 sunsoo@sportschosun.com, 사진제공=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