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히 많은 책임감을 느낀다."
'캡틴' 손흥민(26)은 올해 기적과 쇼크를 동시에 경험했다.
그는 2018년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에서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격파하는 기쁨을 누렸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의 강호를 꺾은 그야말로 '카잔의 기적'이었다.
그로부터 두 달여가 지났다. 믿기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대표팀은 17일(한국시각) 인도네시아 반둥의 시 잘락 하루팟 스타디움에서 열린 말레이시아와의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조별리그 2차전에서 1대2로 패했다.
두 개 대회 연속 우승을 노리던 한국은 1승1패가 됐다. 말레이시아는 2승으로 조 1위에 랭크됐다. 한국이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키르기스스탄을 이기고, 말레이시이가 바레인에 패해도 2위로 16강에 진출할 수 있다. 조 1위는 좌절됐다. 반둥 쇼크다.
최악의 시나리오, 정상으로 가는 길이 더욱 험난해졌다. 조 1위로 16강 티켓을 따냈다면, 경기장을 많이 옮겨 다닐 필요도 없었다. 1위 진출시 8강부터 결승까지는 똑같이 보고르의 파칸사리에서 경기를 치르게 된다. 말레이시아전 패배로 그 기회가 사라졌다. 게다가 토너먼트 첫 경기에서 중동의 강호 이란과 격돌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경기 뒤 손흥민은 "0-2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선수들도 나도 조금 조급했다. 선수들이 초반에 실점해서 당황했다. 어린 선수들인데 경기장에서 컨트롤 할 선수가 없어 아쉬웠다. 나도 많은 책임감을 느낀다. 로테이션을 하든 우리는 20명이 한 배를 탔다. 나 하나쯤이라는 생각보다는 다 같은 생각을 갖고 경기에 나갔으면 좋겠다. 충분히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대표팀은 선발 6명을 바꾸는 과감한 로테이션을 가동했다. 체력 안배와 실전 감각을 위한 선택이었다. 최근 빡빡한 일정을 소화한 손흥민 역시 체력 안배 차원에서 선발 제외됐다. 하지만 경기 시작 4분여 만에 선제골을 허용하며 경기가 꼬이자 결국 후반 교체 투입됐다. 그는 33분가량 그라운드를 누볐다. 하지만 기울어진 승패를 바꿀 수는 없었다.
손흥민은 "솔직히 얘기해서 창피하다. 소집해서 바로 얘기했던 게 '방심하면 큰 일 난다'고 얘기했는데, 선수들이 '이 팀쯤이야'라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선수들과 다시 한 번 미팅해서 많은 얘기를 나누는 게 상당히 중요하다.상당히 많은 책임감을 느낀다. 어린 선수들이지만, 다들 성인이고 프로팀에서 축구하는 선수들이다. 언제까지나 다독일 수는 없다"고 강하게 말했다.
김학범호는 20일 키르기스스탄과 최종전을 치른다.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