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백지은 기자] 어제의 동지는 오늘의 적이 됐다.
박시후와 신혜선의 얘기다. 박시후와 신혜선은 KBS2 주말극 '황금빛 내 인생'에서 커플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이들의 애잔하고 달달한 케미에 힘입어 '황금빛 내 인생'은 시청률 40%를 돌파, 신드롬을 불러왔다.
그렇게 힘을 합쳤던 둘은 경쟁자로 재회했다. 신혜선이 SBS 월화극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로 시청률 불패 신화를 쓰고 있는 가운데 박시후가 KBS2 월화극 '러블리 호러블리'로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과연 박시후는 역전에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면 신혜선의 굳히기 한판으로 귀결될까.
일단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의 기세는 하늘을 찌른다. 신혜선은 17세의 정신으로 30세가 되어 깨어난 우서리를 귀엽고 사랑스럽게 그려내며 몰입을 높인다. 멘탈과 피지컬의 부조화로 인한 혼란과 딜레마를 코믹하게 그려내면서도 순수한 여고생의 매력을 고스란히 살려낸 신혜선의 하드캐리 덕분에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는 지난 13일 방송분이 8.2% 9.7%(닐슨코리아, 전국기준)의 시청률을 기록, 10% 돌파를 가시화했다.
여기에 신혜선을 향한 양세종과 안효섭의 사랑이 시작되며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는 본격적인 전개에 돌입한다. 지난 13일 방송에서는 타인과 얽히는 것을 철저히 차단하며 살았던 공우진(양세종)이 우서리에게 한발짝 다가가 그의 주변 남자들을 차단하기 시작하는 모습이 그려지며 웃음을 자아냈다. 공우진은 우서리에게 흑심을 품고 접근하는 진상 의뢰인(권혁수)를 견제하며 만취상태가 될 때까지 우서리를 사수했고, 우서리를 위해 스스로 일감을 따오며 변화를 예고했다. 유찬(안효섭)의 짝사랑도 무르익었다. 그는 전국대회 1등을 한 뒤 우서리에게 고백하기로 결심하고 녹초가 될 때까지 연습에 매달렸다. 방전 상태에서도 우서리만 보면 전력질주 하는 모습에 누나팬들의 마음도 함께 들썩였다.
삼촌과 조카가 한 여자에게 빠지는 그림은 사실 보기에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망가져도 울어도 러블리한 신혜선의 매력은 이러한 삼각관계에도 설득력을 불어넣었고, 이에 시청자도 우서리에게 감정이입해 이들의 관계 변화를 지켜볼 수 있게 됐다.
다만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에게도 약점은 있다. 일단 극 전개 템포 자체가 매우 느리다. 한발짝 다가서면 한발짝 물러나는 거북이 전개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스피디한 폭풍 전개를 좋아하는 최근 시청자 트렌드를 쫓을 수 있을지가 미지수다. 또 남자 주인공인 양세종의 연기에 대해서도 호불호가 갈린다. 직진 사랑꾼의 면모를 보이고 있는 그의 핑크빛 매력에 빠졌다는 쪽도 있지만, '낭만닥터 김사부'부터 '사랑의 온도'까지 보여줬던 연기나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에서 보여주는 연기나 별다른 차이를 못 느끼겠다는 의견도 상당하다. 이러한 반발론을 어떻게 잠재우고 추가 시청층을 유입할지에 따라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의 1위 굳히기 성공 여부도 갈릴 전망이다.
'러블리 호러블리'도 순조로운 출발을 알렸다. 13일 첫 방송된 '러블리 호러블리'에서는 박시후와 송지효의 첫 만남부터 재회까지가 다이내믹하게 그려지며 눈길을 사로잡았다. 하나의 운명을 나눠가진 불운한 소년 필립(박시후)과 유복한 소녀 을순(송지효)은 24년 후 대한민국 최고 배우와 '불운의 아이콘' 작가 지망생이 되어 재회했다. 칼을 들고 여자를 위협하는 남자를 목격한 두 사람은 티격태격했고, 결국 을순이 칼에 찔릴 뻔한 필립을 막아서며 위기에서 벗어났다. 이후 을순은 '귀, 신의 사랑' 대본을 넘기는 대신 공동작가로 이름을 올려주겠다던 은영(최여진)이 자신을 배신한 사실을 알게 됐고, 엄마의 무덤 앞에서 노트북과 대본을 묻으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이상한 노래소리와 함께 2부 엔딩 영감이 떠올랐다. 그때 길을 잃고 헤매던 필립은 한 점쟁이(김응수)를 만나 무서운 예언을 들었고, 을순의 대본처럼 산사태에 갇혔다. 그리고 무너져 내린 흙더미에서 여자 시체로 추정되는 손가락이 드러나며 필립과 을순의 범상치 않은 앞날이 예고됐다.
이처럼 '러블리 호러블리'는 스피디하고 유쾌한 전개로 필립과 을순의 예사롭지 않은 운명을 그려냈다. '운명 공동체'라는 신선한 소재는 향후 전개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했고, 박시후와 송지효의 열연은 극의 재미를 더했다. 머리를 풀어 헤치고 남루한 옷차림으로 암울한 을순 캐릭터에 젖어든 송지효는 예쁨을 내려놓고 거침없이 망가지며 웃음을 안겼다. '공주의 남자' '황금빛 내 인생' 등으로 젠틀한 이미지를 쌓은 박시후도 연기 변신을 꾀했다. 칼을 든 남자를 막기 위해 비닐봉지를 복면처럼 뒤집어 쓰고 차에서 내리는 등 '쫄보미'와 '허당미'를 장착, 전에 없던 코믹 연기로 시청자를 웃음 짓게 했다. 이렇게 독창적인 소재와 빠른 템포의 전개, 그리고 배우들의 찰떡 케미는 '러블리 호러블리'만의 분명한 무기다.
물론 '러블리 호러블리'는 방송 전 제기됐던 강민경PD의 세월호 유가족 비하 논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상황이고, 그것을 상쇄할 만큼의 매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숙제는 끌어안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첫 방송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시청자들은 오랜만에 만나는 신선한 로코라는 점에 가산점을 줬고, 박시후와 송지효의 완벽한 연기 변신에서 비롯된 꿀케미에도 높은 평가를 내렸다. 이에 첫 방송 시청률도 선전했다. 이날 방송된 '러블리 호러블리'는 4.8% 5%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는 전작 '너도 인간이니' 최종회(6.5%, 7.8%)보다는 부족한 기록이지만, 월화극 2위로 안정적인 출발을 알리는데 성공했다.
'황금빛' 시청률을 쏘아 올렸던 신혜선과 박시후는 이제 경쟁자의 입장에서 시청률 전쟁을 벌여야 한다. 각기 다른 매력의 작품으로 시청자와 만난 이들 중 마지막에 웃는 쪽은 누가 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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