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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의 그늘·비운의 축구인생 이범수 경남 GK, 늦게 핀 꽃이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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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가경(晩秋佳景).

'늦게 핀 꽃이 더 아름답다'라는 의미다. '반전의 남자' 이범수 경남 골키퍼(28)를 잘 설명하는 고사성어다.

이범수는 지난 5일 'K리그 절대 1강' 전북전에서 '선방쇼'를 펼치며 팀의 1대0 승리를 이끌었다. 유효슈팅을 무려 12개나 막아냈다. 김종부 경남 감독도 이범수를 향해 엄지를 세웠다. "범수가 경남에 와서 모든 것이 잘 풀리고 자신감을 얻었다. 재능을 충분히 갖췄다. 그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내 역할이다."

무엇보다 친정팀을 상대로 펼친 활약이었다. 이범수에게는 승리가 더 크게 다가왔다. 경기가 끝난 뒤 최강희 전북 감독과 최은성 전북 골키퍼 코치가 "잘했다"라며 어깨를 두드려 주자 이범수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 "이런 기분을 전북에서 느끼고 싶었다. 경기가 끝나고 팬들이 내 이름을 불러주실 때 살짝 울컥했다."

이범수의 축구인생은 시작부터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망울만 맺히고 피지 못한 꽃봉오리였다. 2010년 전북 유니폼을 입고 프로 선수가 된 그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았다. 당시 골문은 권순태가 공고하게 지키고 있었다. 홍정남과 김민식도 버티고 있었다. 이범수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데뷔시즌 한 경기 출전에 불과했던 이범수는 이듬해에도 두 차례밖에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다. 2012년이 되자 주전경쟁은 더 험난해졌다. '베테랑' 최은성(현 전북 골키퍼 코치)까지 가세했다. 팀 내 네 번째 수문장으로 밀려났다. 전북에서 지냈던 5년간 출전수는 고작 3경기였다.

이범수는 "그 땐 나약했다. 전북에서 내로라 하는 골키퍼를 많이 데려왔지만 내 스스로도 부족했다. 그래서 기가 많이 죽어 있었다. 주눅 들어 있었다. 내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2015년 이적을 결심했다. K리그2(2부 리그)에서 창단한 서울이랜드로 둥지를 옮겼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국가대표 출신 김영과의 그늘에 늘 가려져 있었다. 이범수는 "이랜드에서도 경기를 제대로 뛰지 못했다. 이후 대전으로 다시 이적했지만 실력발휘를 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한 살 터울인 스타 골키퍼 형의 그늘도 짙었다. 이범영은 2012년 런던올림픽 8강 승부차기 선방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이범수는 '축구선수 이범수'가 아닌 '이범영의 동생'으로 불렸다. "모든 분들이 '범영이 동생'이라고만 말씀하셨다. 하지만 부담은 크지 않았다. 형과는 서로 격려해주는 존재다. 항상 경기가 끝나면 형이 피드백을 준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것일까', '아님 실력이 없는 것일까'란 생각에 속앓이를 많이 했다. 이범수는 "'내 축구인생을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많았다. 사실 대전에 있을 때 축구를 그만두려고 했다. 경남은 마지막 도전이다. 그래서 1년만 계약했다. 여기서 못하거나 흐지부지 하면 깔끔하게 다른 일을 하자고 했는데 김종부 감독님께서 기회를 많이 주셔서 그 동안 뛰지 못한 한을 풀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간절하게 바라면 이뤄진다'라고 했던가. 이범수는 경남이 K리그2 소속이던 지난해 21경기에 출전, 18실점으로 0점대 선방율을 보였다. 지난 7년간 전북-서울이랜드-대전에서 뛴 경기수(18경기)보다 많았다. 올 시즌 십자인대 부상에서 회복된 뒤 지난달 28일 서울전부터 출전했는데 전북전까지 슈퍼세이브로 2연승을 이끌었다.

이범수는 "우리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건 생각도 못했다. 감독님께선 '더 큰 꿈을 가져라'고 주문하신다"며 "워낙 팀이 잘 나가고 있지만 승리에 젖어있기 보다 한 경기, 한 경기 잘 준비하자는 분위기다. 경남 선수들은 배고팠던 선수들이 많다. 절실함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범수의 축구인생에 서광이 비추기 시작했다. 전주=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