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멘털 스포츠다.
두산 베어스 오재일은 누구보다 '화끈한' 여름을 보내고 있다. 전반기 성적은 우울했다. 개막 이후 줄곧 중심 타자로 나섰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개막 이후 7경기에서 그의 타율은 1할6푼7리(24타수 4안타)에 불과했다. 시간이 지나면 감을 찾을거라 봤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5월을 마쳤을때 오재일의 타율은 여전히 2할 초반대에 그쳤다.
결국 6월초 한차례 2군에 다녀왔지만, 열흘을 채우고 돌아온 오재일 정상 페이스를 찾지 못했다. 6월 마지막주 6경기에서도 13타수 2안타에 그쳐 타율이 2할1푼5리까지 떨어졌고 오재일은 7월 2일 개막 이후 두번째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기대가 컸던 시즌이기에 더 아쉬웠다. 오재일은 지난 3년간 꾸준히 성장해 두산의 핵심 선수로 자리를 잡았다. 2016년 데뷔 후 처음으로 20홈런을 돌파(27홈런)했고, 92타점을 쓸어담았다. 지난해에도 3할 타율(0.306)을 유지하면서 26홈런-89타점으로 제 몫을 했다. 무엇보다 포스트시즌에서 보여준 '크레이지 모드'가 인상적이었다. 작년 플레이오프에서 6할 타율(15타수 9안타)-5홈런-12타점 믿을 수 없는 활약을 펼치며 MVP로 선정된 오재일은 한국시리즈에서도 존재감을 이어갔다. 비록 팀은 준우승에 그쳤지만, 큰 경기에서 그의 가치를 증명하는 무대였다.
자연스럽게 올 시즌 구상에서도 오재일은 1루와 중심 타선에 배치됐다. 하지만 예상 밖의 부진이 이어지자, 김태형 감독과 코치진은 큰 고민에 빠졌다.
고토 고지 타격코치, 강동우 타격코치와 박철우 벤치코치까지 '오재일 살리기'에 나섰다. 고토 코치가 "가족사진보다 오재일 타격 영상을 더 많이 보는 것 같다"고 농담을 던질 정도로 코치들이 함께 고민하며 부진의 이유를 찾아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김태형 감독도 오재일에게 스스로 감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을 주며 좋아지기를 기다렸다. 물론 여유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두산은 외야와 1루 멀티 플레이를 해주길 바랐던 지미 파레디스가 개막 직후부터 극도의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7월초 영입한 스캇 반슬라이크도 컨디션이 좋지 않다. 오재원 최주환 류지혁 등이 번갈아가며 1루를 맡았지만, 최상의 시나리오는 오재일이 살아나는 것이었다.
누구보다 답답한 것은 본인 스스로였다. 두차례 2군을 오르내리면서 오재일은 부진을 탈출하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성적이 좋지 않으니 타석에서의 자신감이 떨어졌고, 더 안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자연스레 선발 제외 경기가 늘어나자 더더욱 감을 찾기 힘들었다.
그런 오재일의 답답한 속을 뻥 뚫어준 계기는 지난 25일 인천 SK 와이번스전이었다. 당시 오재일은 8번-1루수로 선발 출전해 3회초 앙헬 산체스를 상대로 솔로 홈런을 터뜨렸다. 6월 26일 NC 다이노스전에서 시즌 10호 홈런을 때려낸 후 한달만에 맛 본 홈런이었다. 오재일은 그 순간에 '이제 됐다'고 생각했다. 팀이 0-7로 지고있는 상황에 나온 대수롭지 않은 홈런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절박했던 선수에게는 부진 탈출의 계기가 된 것이다. 그날 경기에서 3타수 3안타를 친 오재일은 이후 7경기에서 5할1푼9리(27타수 14안타) 5홈런 10타점으로 리그 전체 타자들 가운데서도 최고의 컨디션을 과시 중이다.
김태형 감독은 "오재일이 멘털적으로 많이 좋아졌다. 지금같은 생각으로만 한다면 계속 원래 자신의 모습이 나올 것"이라며 칭찬했다. 두산이 7월말 4연패에 빠졌을 때도 오재일에게 "그래도 네가 위안이 된다"며 웃었던 김 감독이다. 김태형 감독과 두산 코칭스태프의 기다림이 드디어 결실을 맺고있다. 오재일의 2018시즌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