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부산 사직구장, 말 그대로 흠뻑 젖었다.
오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경기 개시를 앞둔 오후 들어 거세졌다. 제 7호 태풍 쁘라삐룬의 맹렬한 북상이 몰고운 비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사직구장 외야엔 곳곳에 물웅덩이가 생기며 거대한 수영장으로 변모했다.
두산 베어스전을 앞두고 홈팀 롯데 자이언츠는 내야는 물론 외야 일부까지 덮는 대형 방수포를 깔았다. 하지만 세차게 내리치는 비에 경기를 할 재간은 없었다. 결국 KBO 경기 감독관이 경기시작 2시간 전에 우천 취소를 결정했다.
그런데 흠뻑 젖은 것은 그라운드 뿐만이 아니었다. 양팀 선수들이 자리 잡는 더그아웃에도 거대한 물웅덩이가 생겼다. 경기장 내부 곳곳에도 물이 새는 모습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비가 그치더라도 경기장 정비를 위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는 상황. 고인 물 탓에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는 관중들의 안전사고도 우려될 수밖에 없다.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경기장 관리인들이 정비 및 대책 마련을 위해 분주히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비가 올 때마다 몸살을 앓는 사직구장 문제는 어제 오늘이 아니다. 선수들 뿐만 아니라 야구장을 찾는 시민들 모두 '야구도시 부산'의 명성에 걸맞는 새 야구장 건설에 대한 열망을 표출했다. 하지만 선거철만 되면 활발히 오가던 새 야구장 건축 논의가 당선자 발표 뒤 쥐죽은 듯 사라지는 모습만 반복될 뿐이었다.
오거돈 부산시장은 지난 1일부터 부산시장에 정식 취임했다. 민선 최초의 민주당계 후보로 '3전4기'를 일군 주인공이다. 오 시장은 쁘라삐룬의 북상 소식에 예정된 취임식 일정을 취소하고 태풍 피해 예방 및 침수 우려 지역을 돌면서 대비 태세를 점검하며 적극적인 '시장 신고식'을 치렀다.
오 시장도 부산의 새 야구장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스포츠조선은 지난 5월 31일 '사직구장 미래, 부산시장 후보에 물었다'를 통해 오 당선인의 비전을 전한 바 있다. 당시 오 당선인은 "롯데 경기는 저녁 식사, 차량 이동 중에도 챙길 정도"라며 '골수팬'을 자처했다. 그는 "매년 바쁘지 않은 휴일 한 두 차례 가족들과 사직구장에 '직관'을 갔다"며 "최근 한 팬이 '부산을 살리는 4번 타자가 되달라'고 말해준 게 기억에 남는다"고 덧붙였다. 사직구장 이슈를 두고는 "개폐형 돔구장은 입지, 재원조달 계획이 수립되지 못해 당장 실현이 어렵다. 국비, 시비, 민자 유치 등 1800억원의 예산을 토대로 개방형으로 조속한 재건축 계획을 수립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민자유치와 투자비 회수, 운영비 조달의 면밀한 검토, 북항 재개발, 2030 엑스포 시설 활용과 연계해 입지를 검토할 것"이라고 꽤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물론 새 야구장이 오 시장의 공약대로 이뤄지기 위해선 시간과 절차가 필요하다. 새 야구장 입지로 거론되는 북항 부지는 정부 소유로 알려졌다. 부산 시민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최고의 야구장을 만들기 위한 지자체-기업 관계자, 시민 여론 수렴 및 공청회도 거쳐야 한다. 무엇보다 야구장 건립을 위한 비용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지자체 정치 역학 구도가 바뀔 때마다 체육 현안은 항상 뒷전으로 밀려나다 흐지부지 되기 일쑤였다. 취임 첫 발부터 부산 살리기에 팔을 걷어붙인 오 시장의 의지가 실현되길 바랄 뿐이다.
부산=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