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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①]실패는 4년 전 이맘때 시작됐다-한국축구에 비전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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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러시아 월드컵, 목표를 향해 달려온 한국축구 4년의 여정이 끝났다. 목표였던 16강 달성은 실패했다. 의미 있는 성과도 있었다. 세계 최강 독일을 상대로 한국축구의 자존심을 세웠다.

우리에게 월드컵은 기대와 우려, 환호와 실망의 교차로였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새로운 4년을 향한 카운트다운이 이미 시작됐다. 단 한 순간도 허투루 보낼 수 없다.

러시아월드컵을 통해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더 이상 '투혼'만으로는 월드컵을 즐길 수 없다. 세계에 맞설 '실력'이 필요하다. 하루 아침에 이뤄질 수 없다. 한국축구의 색깔을 회복할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하다. 시스템 구축을 위해 변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모든 걸 바꿔야 한다. 혁명적 변화, 진정한 의미의 혁신만이 답이다. 케케 묵은 관습, 조직, 방법, 사고 방식 등을 전부 갈아 엎어야 한다.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길 잃은 한국축구에 스포츠조선이 시리즈를 통해 '구체적 대안'을 제시한다. ①'포스트 신태용'? '비전'을 정하는게 먼저다



2014년 한국축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2000년대 들어 한국축구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어왔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시작으로 2006년 독일 대회 원정 첫 승, 2010년 남아공 대회 원정 첫 16강까지, 한국축구는 철옹성 같았던 월드컵을 조금씩 넘어섰다. 팬들의 기대도 하늘을 찔렀다. 무려 81%가 16강을 예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1무2패, 2000년대 들어 최악의 성적표였다. 귀국길의 홍명보호를 반겨준 것은 팬들의 엿세례였다. 후폭풍은 거셌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까지 따내며 승승장구하던 '영원한 리베로' 홍 감독은 의리 논란까지 불거지며 쫓겨나듯 지휘봉을 내려놨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고개를 숙였다. "월드컵대표팀의 성적 부진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고백한 정 회장은 "현재의 시련을 거울삼아 도약을 위해 뼈를 깎으며 노력하겠다"고 했다. 집행부가 바뀌었고, 새로운 판이 짜였다. 그 시작은 대표팀 감독 선임이었다.

유소년이 풀뿌리라면, 대표팀은 한 나라 축구의 정점이다. 대표팀은 그 나라 축구가 나가고 있는,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읽을 수 있는 바로미터다. 그래서 비전이 중요하고, 이를 실행시킬 지도자가 중요하다.

새롭게 선임된 이용수 기술위원장의 임무는 외국인 감독 영입이었다. 이 전 위원장은 2002년 한-일 대회에서 히딩크 감독을 데려와 성공을 이끈 노하우를 갖고 있었다. 기대치도 컸다. 첫번째 협상 대상자는 2010년 남아공 대회에서 네덜란드를 준우승으로 이끈 베르트 판 마르바이크였다. 하지만 거주지에 대해 이견을 보이며 협상이 틀어졌다. 이후 극비리에 감쳐줬던 대한축구협회의 선택은 놀랍게도 울리 슈틸리케였다. 그야말로 깜짝 카드였다. 이 전 위원장은 그의 가능성을 봤다고 했다. 대표팀 외에 한국축구 전체의 발전에도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여기서부터 첫 단추가 잘못 꿰어졌다. 핵심은 '누가 감독이 될 것인가'가 아니었다. 바로 '어떤 축구를 펼치는 감독이 될 것인가'였다. 2014년 한국축구는 처절하게 실패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다시 세계에 부딪힐지, 냉정한 분석이 필요했다. 2014년 브라질 대회의 특징은 '점유율 축구'의 몰락이었다. 2010년 남아공 대회에서 완벽한 경기력으로 우승을 거머쥔 '티키타카' 스페인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아시아에서 가장 점유율 축구를 잘한다는 일본 역시 조별리그를 넘지 못했다. 우리의 축구는 '한국형 축구'로 포장됐지만, 실상 스페인식 4-2-3-1을 표방한 '점유율 축구'였다.

점유율 축구가 안된다면, 새로운 방향이 필요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이를 놓치고 말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점유율'을 강조했다. 패해도 "점유율은 우리가 높았다"고 뻔뻔스럽게 얘기할 정도였다. 슈틸리케 감독이 어떤 축구를 펼치는지, 그 축구로 세계에 맞설 수 있는지에 대한 냉정한 분석 없이 영입한 결과였다. 아시안컵과 이후 월드컵 예선에서 승승장구 했지만, 냉정하게 말해 한국축구는 브라질월드컵 이전과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었다. 슈틸리케 감독의 용병술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축구를 하는 감독을 택한 것이 문제였다. 불운하게도 슈틸리케 감독은 경질된 후 한국을 욕할 정도로 인성조차 갖춰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우리는 그런 감독에게 3년이나 기회를 주며 허송 세월을 했다.

일본의 예를 들어보자. 일본은 브라질 참패 이후 방향을 틀었다. 더 이상 짧은 패스 게임으로는 세계에 도전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보다 빠른 축구로 변화를 택했다. 삼고초려 끝에 영입한 하비에르 아기레 감독을 영입했다. 멕시코와 오사수나에서 빠른 축구로 성과를 낸 감독이었다. 하지만 승부조작으로 갑자기 지휘봉을 내려놓으며 꼬여버렸다. 이어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을 영입했다. 2014년 브라질 대회에서 알제리를 이끌며 한국에 망신을 줬던 그 감독이었다. 당시 알제리의 역습은 당시 우승팀 독일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하지만 할릴호지치 감독은 아기레 감독보다 더 극단적으로 역습을 선호했다. 일본은 할릴호지치식 축구에 끝내 적응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그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 이번 월드컵의 키워드는 점유가 아닌 속도다.

포스트 러시아 시대를 준비 중인 협회가 먼저 할 것은 냉정한 분석이다. 우리가 왜 실패했고, 앞으로 어떻게 나갈지에 대한 확실한 비전을 정해야 한다. 감독 선임은 그 다음이다. 일단 비전에 맞는 리스트를 꾸리고, 그에 맞는 인물을 찾아야 한다. 독일전에서 보여준 축구를 특화시키길 원한다면, 수비 구축과 역습에 능한 감독을 찾아야 한다. 아님 점유율 축구가 우리에게 맞다는 결론을 내린다면, 그에 맞는 사람을 고르면 된다.

협회는 이미 외국인 감독을 물색 중이라고 한다. 팬들의 성난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이름값에만 얽매이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아울러 축구계 전반에 걸친 인적 쇄신도 필요하다. 4년 전 쇄신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데 대해 누군가는 분명 책임을 져야 한다. 특히 협회 수장으로서 정몽규 회장은 이제 한 발 물러서야 할 때가 됐다. 여러차례 경고음이 울렸고, 고강도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지만 칼자루를 쥔 정 회장의 리더십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은 안된다. FIFA(국제축구연맹) 평의회 위원인 정 회장은 '외치'에 집중하는 대신 국내 축구 현안은 '젊은피'에게 칼자루를 넘겨주는 용단도 필요하다. 또 앞으로 새로운 4년, 더 나아가 향후 10년, 20년의 미래를 설계할 때 걸림돌이 되는 인사라면 가차 없이 칼을 빼 들어야 한다. 지난해 11월 재편된 현재의 협회 집행부도 한쪽 가슴에 사표를 꽂고 한국축구 개혁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벼랑 끝에서 기사회생 한 한국축구, 새로운 출발점은 세계 1위 독일을 꺾은 '오늘'이 돼야 한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