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전 이맘 때였다. 한국 축구는 큰 위기를 맞았다. 자칫 삐끗하면 2018년 러시아월드컵 본선에 못 나갈 수도 있었다.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는 대한축구협회 입장에선 대재앙이었다. 수십억원에 달하는 스폰서가 떨어져 나갈 수도 있었다.
당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끈 한국 축구 A대표팀은 6월 13일 도하에서 벌어진 카타르와의 아시아 최종예선전서 2대3으로 졌다. "슈틸리케 감독을 당장 경질하라"는 맹비난이 쏟아졌다. 앞서 2017년 3월 23일 중국과의 원정 최종예선전에서 0대1로 졌을 때부터 축구팬들의 부정적인 여론은 들끓었다.
축구협회 수뇌부는 더이상 슈틸리케에게 감독 지휘봉을 맡기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모양새는 계약 종료였지만 성적부진의 책임을 물어 사실상 경질했다. 남은 계약기간 1년치 연봉은 다 주었다. 또 슈틸리케 감독을 영입했던 이용수 기술위원장도 동반 사퇴했다.
신태용 감독이 위기 상황서 '구원 투수'로 낙점됐다. 당시 김호곤 신임 기술위원장이 중심이 된 기술위원회가 신태용을 비롯, 감독 후보군을 놓고 투표 끝에 선정한 결과였다. 젊은 신태용 감독(당시 47세)은 신세대 선수들과 좀 더 의사소통을 잘 할 지도자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신 감독은 슈틸리케 감독을 코치로 보좌했었고 FIFA 20세이하 월드컵까지 마친 상황이었다.
신 감독에게 주어졌던 1년의 시간이 거의 끝나간다. 한마디로 롤러코스터 처럼 정신 없었던 시간이었다. 그는 월드컵 본선 경험이 없었다. 모든 게 새로웠고 첫 경험이었다. 앞서 리우올림픽, 20세이하 월드컵을 치러봤지만 월드컵 본선의 무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그는 1차 과제를 임무 달성했다. 8월 31일 이란과의 아시아 최종예선서 0대0으로 비겼다. 승점 1점을 획득해 아슬아슬하게 조 2위를 지켰다. 그리고 9월 5일 우즈베키스탄과의 원정 최종예선전에서도 무득점 무승부로 가까스로 조 2위를 지키며 월드컵 본선 9회 연속 진출을 이뤄냈다.
1차 임무 완수라는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신 감독에게 시련이 닥쳤다. '거스 히딩크 감독 모시기 논란'이 불어닥쳤다. 최종예선 두 경기 무승부를 통해 드러난 신태용호의 경기력에 의문부호가 붙었다. 히딩크 재단 측의 한 관계자는 히딩크 감독의 한국을 돕고 싶다는 의사가 있다는 사실을 문자 메시지를 통해 당시 협회 부회장이었던 김호곤 기술위원장에게 전했다. 히딩크 재단 측이 이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자 히딩크 감독을 재영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히딩크 광풍이었다. 신태용 감독은 벙어리 냉가슴을 앓아야 했다. 약 한달의 시간을 허송세월했다. 축구협회는 신 감독을 계속 신뢰한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하지만 시련은 끝이 아니었다. 10월 유럽 원정 A매치가 치명타였다. 러시아에 2대4로, 모로코에 1대3로 완패했다. 해외파들만 불러 점검 차원에서 치른 두 차례 친선경기서 수비라인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다시 축구팬들의 비난이 축구협회로 향했다. 김호곤 위원장, 신태용 감독은 물론, 정몽규 협회장까지 물러나라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러한 비난의 분위기에 정치인들까지 숟가락을 얹었다. 국정감사에 김호곤 기술위원장의 출석을 요구하기도 했다.
축구협회는 더이상 '팬심'을 외면할 수 없었다. 김호곤 기술위원장이 물러났다. 그리고 제법 큰 폭의 협회 물갈이 인사가 있었다. 안기헌 전무도 물러났다. 협회 부회장단 얼굴도 많이 바뀌었다. 새롭게 홍명보 전무가 행정가로 변신해 전면에 포진했다. 김판곤 대표팀 감독선임위원장(부회장)이 새로 등장했다. 최영일 부회장, 이임생 기술위원장, 박지성 유스전략본부장도 새로운 인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분위기 전환 효과는 있었다. 홍명보 박지성 두 월드컵 영웅이 등장하자 분노했던 여론이 조금 가라앉았다.
다사다난했던 2017년의 마무리는 나쁘지 않았다. 신태용호는 11월 국내 친선 A매치에서 콜롬비아를 2대1로 제압했고, 세르비아와는 1대1로 비겼다. 12월 일본서 열린 동아시안컵에서 일본에 4대1 대승을 거두며 우승했다. 월드컵 본선 조추첨에서 한국은 독일 멕시코 스웨덴과 같은 F조에 포함됐다. '죽음의 조'가 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2018년도 총알 처럼 빨리 지나갔다. 국내파 중심으로 치른 1~2월 유럽 전지 훈련과 3차례 친선 A매치를 가졌다. 김신욱이 3경기서 총 4골을 넣는 원맨쇼를 펼쳤다.
3월 유럽 원정 A매치는 신태용호에 다시 한번 불안감을 던졌다. 정예 멤버를 꾸렸고 사실상의 월드컵 본선 베스트11로 나간 한국은 북아일랜드에 1대2, 폴란드에 2대3으로 졌다. 신태용호의 공격적인 축구가 유럽 원정에서 계속 제동이 걸렸다. 신 감독의 축구 색깔은 공격에 무게가 실렸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본선에서 싸워야 할 상대는 기본 전력이 더 센 독일 멕시코 스웨덴이었다. 신태용호의 불안한 수비 조직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늘 제기됐다. '신태용 축구는 항상 수비가 약하다'는 꼬리표가 생겼다. 신 감독도 '학습 효과'가 있었다. 더 강한 상대를 공격 대 공격으로 맞불을 놓아서는 이기기 힘들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웠다. 월드컵 본선에선 수비를 튼튼히 하는 게 우선이었다.
5월이 시작되자 '부상 악령'이 몰아닥쳤다. 3월 A매치 때 풀백 김진수(무릎)를 시작으로 중앙 수비수 김민재(종아리뼈) 공격형 미드필더 권창훈(아킬레스건) 염기훈(갈비뼈) 이근호(무릎)까지 줄부상으로 본선 합류가 불발됐다. 특히 김진수와 김민재 공백은 신태용호 수비라인에 치명타였다. 주전 4자리 중 두 자리가 빠졌다. 이청용도 28명 소집 후 치른 온두라스와의 첫 평가전에서 엉덩이 타박상을 당했고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아 최종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신 감독은 대신 경험이 적지만 패기가 넘친 이승우 문선민 오반석을 깜짝 발탁했다.
5월 21일 첫 소집 이후 월드컵 본선까지 마지막 한 달은 '정보전'이 신태용호의 키워드였다. 신 감독은 "우리나라가 기본 전력이 약하기 때문에 더욱 전술과 전략을 숨겨야 한다"고 말했다. 유니폼의 등번호를 바꿨고, 전술 훈련을 단 한번도 공개하지 않았다. 미디어와 팬들은 '도대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 걸까' 고개를 갸우뚱했다. 신태용 감독 발언의 상징이 된 '트릭' 발언도 정보전의 연장선상에서 나왔다. 4차례 모의고사에서 1승1무2패를 거둔 신태용호는 월드컵 본선서 두 차례 PK골을 내주는 불운 속에 스웨덴에 0대1, 멕시코에 1대2로 졌다. 스웨덴전에선 김민우가 백태클로, 멕시코전에선 장현수가 핸드볼 파울로 PK를 허용하고 말았다. 그리고 기적을 꿈꿨던 마지막 독일전에서도 2대0 승리했다. 1승2패로 조별리그 탈락했지만 독일을 80년만에 조별리그에서 탈락시키면서 세계 축구사의 한획을 그었다. 신태용 축구가 마지막에 위력을 발휘했다. 카잔=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