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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회의 러시아 아웃사이더]팬 비난에 상처받은 김영권, 그 비난으로 다시 일어서 '갓영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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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월 전이었다.

김영권(28·광저우 헝다)은 말 한 마디에 '국민 욕받이'가 됐다. 사실 실언도 아니었다. 한국축구의 운명이 달렸던 이란과의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9차전에서 그는 "훈련 과정에서 세부 전술들을 맞춘 게 있었는데 경기장 함성이 워낙 커 소통이 잘 되지 않아 훈련한 걸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고 말했다. 당시 상암벌에는 6만3124명의 구름관중이 들어찼다. 충분히 그라운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발언을 두고 팬들의 비난이 쇄도했다. 부진했던 경기력을 팬들의 함성 탓으로 돌리냐는 것이었다. 도가 지나친 비난 여론에 김영권은 SNS 계정을 폐쇄하기도 했다.

이후 김영권은 장기 부상 여파 탓도 있었지만 지난해 12월 동아시안컵에 발탁되지 않았다. 위기감을 느꼈다. '월드컵에 가지 못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자숙모드'로 돌입했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택한 것이 '몸 만들기'였다. 지난 겨울 누구보다 많은 땀을 흘렸다. 시즌에 돌입해서도 웨이트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결과, 몸 상태를 가장 좋았던 20대 초반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 부분이 월드컵에서 누구보다 많이 뛰면서 팀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김영권은 신 감독이 믿을 수밖에 없는 중앙 수비 카드이긴 했다. 신 감독이 최종명단에 포함한 다섯 명의 센터백 중 유일한 월드컵 경험자였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멤버였다. 신 감독에게는 월드컵 경험을 공유할 김영권이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다.

역시 경험자는 달랐다. 생애 첫 월드컵을 뛰는 선후배들의 든든한 조력자가 됐다. 게다가 정신무장도 남달랐다. 눈빛에서 느껴졌고 그라운드에서 보여졌다. 월드컵 세 경기 내내 몸을 사리지 않았다. 상대 공격수의 슈팅을 육탄방어로 막아냈다. 또 수차례 실점기회를 몸을 던져 저지했다. 지난 18일 스웨덴전(0대1 패)이 끝난 뒤 김영권은 "다시 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이란전 당시에는 팬들께 죄송스러웠다. 그러나 나를 응원해주시는 팬들이 있었기 때문에 버텨왔다. 그래도 월드컵 첫 경기인 만큼 팬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경기를 해야 했다. '실점하면 죽는다는 마음가짐'이었다"고 전했다.

김영권은 오스트리아 전지훈련부터 틈만나면 수비수들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다양한 상황에 대해 얘기를 많이 했다. 그는 "수비수들과 모여 비디오 미팅을 거의 매일 했다. 그리고 내가 체력이 남아있어 다른선수들 몫까지 해줘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공격수들도 다같이 수비를 해줬다"고 설명했다.

김영권이 정점을 찍은 건 독일과의 조별리그 최종전이었다. 허슬 플레이 뿐만 아니라 '세계랭킹 1위'이자 '디펜딩 챔피언'을 무너뜨리는 결승 골까지 작렬시켰다. 후반 추가시간 세트피스 상황에서 문전 혼전 중 골망을 흔들었다. VAR(비디오판독)이 정확하게 작동했다. 반전 또 반전이었다. 독일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비난을 쏟아내던 팬들은 다시 돌아섰다. '갓영권', '킹영권'이라고 칭찬하던 한 팬은 '월드컵에서 모든 걸 보여준 김영권, 설령 골을 못 넣었어도 이번 월드컵에서 김영권은 최고였음', '역시 여론은 실력으로 뒤집을 수 있다는걸 보여준 좋은 사례' 등 극찬을 쏟아냈다. '인간극장'을 찍은 김영권은 "(팬들의 비난이)나한테는 많은 도움이 됐다. 그런 비난이 없었다면 월드컵 골도 없었을 것이다. 비난이 나를 발전시켰다"며 환희의 눈물을 흘렸다.

김영권에게는 스스로 극복해내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사람도 있었다. 바로 '어머니'였다. 아들이 과한 비난을 받을 때 인터넷도 하지 않았던 어머니가 올해 초 폐암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해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갓영권'은 '효자'였다. 카잔(러시아)=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