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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하석주팬파크, 현장의 팬들은 태극전사를 비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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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밤 11시 이태원의 멕시칸 레스토랑 바토스, 하석주 팬파크엔 70명의 선택받은 열혈 축구팬들이 모였다.

러시아월드컵 공식 후원사인 현대자동차가 기획한 이색 응원전엔 열혈 축구팬들이 대거 몰렸다. 무려 232대1의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당첨된 행운의 주인공들은 하석주 아주대 감독과 함께 러시아월드컵 F조 조별리그 2차전 멕시코전을 관전했다. 하 감독과 20년 전 월드컵의 추억을 함께 나누고, 멕시코 과자 나초를 씹어먹으며, 설레는 마음으로 태극전사들을 기다렸다.

긴장감 속에 경기가 시작됐다. 전반 6분, 풀백 김민우가 상대 공격수를 영리하게 몰아내자 박수가 터졌다. 전반 13분 문선민의 씩씩한 역습에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전반 24분 페널티킥을 허용하기 직전까지 공격적인 흐름을 장악한 태극전사들의 선전에 팬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장현수의 뼈아픈 핸들링 반칙, 페널티킥을 내준 후에도 팬들은 낙심하지 않았다. 한결같은 응원전을 이어갔다.

하프타임, 하석주 감독은 "너무너무 아쉽다. 전반에 좋은 기회가 있었는데…"라며 선제골을 넣지 못한 부분을 아쉬워 했다. "좋은 흐름에서 페널티킥을 내준 게 하필 장현수라서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도 했다. "말했다시피 멕시코는 우리가 충분히 해볼 수 있는 팀이다. 스피드, 피지컬에서 밀리지 않는다. 높이에서는 우리가 앞선다. 이렇게 공격적으로 잘할 수 있는데…, 그래서 우리것을 보여주지 못한 스웨덴전이 더 아쉽다. 1차전 스웨덴에게 비기거나 이기고 왔다면 멕시코전은 훨씬 부담없이 여유 있게 잘했을 것"이라고 봤다. "후반 20분 이전에 만회골이 나온다면 해볼 만하다"고 기대했다.

후반 다급한 움직임 속에 좀처럼 만회골은 터지지 않았다. 오히려 멕시코에게 '역습' 추가골을 허용했다. 한순간, 장내엔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모두가 멕시코의 골에 망연자실한 순간 하 감독은 말했다. "골 장면 전에 멕시코가 기성용한테 파울을 했다. 심판이 불어줬어야 한다." 골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파울에 대해 VAR이 적용되지 않은 부분을 지적했다. 이어진 리플레이 화면, 팬들은 아쉬움과 분노의 탄식을 쏟아냈다.

시간이 흐를수록 , 패색이 짙어졌다. 후배들이 20년전 멕시코전의 아픔을 설욕하고 날아오르길 기도했던 '선배' 하 감독의 표정은 눈에 띄게 침통해졌다.

후반 인저리타임 손흥민의 만회골은 '사이다'였다. 분위기가 반전됐다. 장내가 떠나갈 듯 뜨거운 함성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팬들은 이 한 골이 마치 결승골인 듯 뛸듯이 기뻐했다. 하 감독도 주먹을 불끈 쥐었다. "2대0과 2대1은 천지 차이다. 손흥민의 골은 큰 위안이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팬들은 한결같은 박수로 태극전사들을 응원했다. K리그, U리그 등 현장을 함께 하며 축구를 오래 사랑해온 '진짜' 축구 팬들이 많았다. 아쉬운 표정은 숨기지 못했지만, 누구 하나, 어느 누구 욕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한 플레이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다리를 절뚝이며 모든 것을 쏟아낸 캡틴 기성용, 마지막까지 골을 향한 집념을 잃지 않은 손흥민, 첫 월드컵 무대에서 거침없이 자신의 100%를 선보인 문선민 등 선수 모두를 향한 존중을 잃지 않았다. 실수 하나에 죽일 듯 달려드는, 무시무시한 온라인 댓글 세상과 사뭇 달랐다. 붉은 유니폼은 입은 70명의 팬들은 마지막까지 "자랑스런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외친 후, 새벽 어스름 사이로 하나둘 사라졌다.

하석주 감독은 월드컵 트라우마를 누구보다 뼈저리게 겪은 이다. 죄스러운 마음에 지난 20년간 차범근 프랑스월드컵 당시 감독을 피해 다녔을 정도다. 하 감독은 장현수, 김민우 등 후배들의 상처를 다독였다. "이 선수들은 지금 경기장에 나가도 자신감이 없을 것이다. 상대와 맞부닥치기도 무섭고, 패스도 무섭고 평생 축구를 하면서 느껴보지 못한 것을 어마어마하게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팬들을 향해 따뜻한 응원을 거듭 당부했다. "여기 오신 분들은 한국축구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이들이다. 비판도 할 수 있지만, 떠나지 말고 끝까지 함께 해달라. 어떤 결과가 나오든, 꼭 손흥민, 기성용이 아니더라도, 힘든 시간을 겪고 있을 이 선수들에게 격려의 댓글, 따뜻한 한마디 해주시면 힘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