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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우리가 알던 독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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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11명과 11명이 공 하나를 쫓아다니다 결국 독일이 이기는 스포츠다."

'잉글랜드의 레전드' 게리 리네커의 유명한 어록이다. 축구에서 독일의 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말이다. 독일은 명실공히 축구 최강국이다. 전대회 출전에 빛나는 브라질이 가장 많은 5번의 우승컵을 들어올렸지만, 꾸준함은 독일이 앞선다. 독일은 19번의 월드컵에서 무려 13번이나 4강에 들었다. 브라질 보다 두번이나 많다. 톱3도 12번으로 9번의 브라질을 앞선다.

'디펜딩 챔피언' 독일은 이번 2018년 러시아월드컵에서도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였다. 독일은 10전승이라는 완벽한 기록으로 유럽예선을 통과했고, 전초전이었던 2017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심지어 컨페더레이션스컵은 1.5군으로 나서 거둔 성과였다. 지난 대회 우승 멤버들이 건재한데다, 참가한 모든 메이저대회에서 4강 이상의 성적을 낸 '명장' 요아킴 뢰브 감독까지 버티고 있는 독일은 객관적 전력에서 가장 앞선 팀이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예상 밖의 스토리가 전개되고 있다. 첫 경기부터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단 한번도 지지 않았던 멕시코에 0대1로 덜미를 잡혔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컨디션 조절 실패 쯤으로 여겨졌다. '세상에서 가장 쓸데 없는 것이 독일 걱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스웨덴과의 2차전까지 부진이 이어지자 시선을 달라지기 시작했다. 토니 크로스의 결승골로 극적인 승리를 거머쥐었지만, 우리가 알던, 그 강력한 독일이 아니었다.

독일은 평가전에서 다양한 실험을 거듭했다. 주력 포메이션을 꼽기 어려울 정도였다. 뢰브 감독은 지난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4-2-3-1 카드를 꺼냈다. 티모 베르너 원톱에, 토마스 뮐러, 메주트 외질, 율리안 드락슬러 등이 2선에 포진했다. 더블볼란치는 토니 크로스가 축이었고, 포백은 마츠 훔멜스, 요수아 킴미히 등이 나섰다. 논란이었던 골문은 부상에서 돌아온 마누엘 노이어가 지켰다. 멤버상으로는 문제가 없다. 백업도 훌륭한 독일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은 모습이다. 창의성을 불어넣어야 할 외질은 정상 컨디션을 찾지 못했고, 크로스도 실수가 많다. 포백도 불안한 모습이다. 무엇보다 속도가 떨어졌다. 베르너, 드락슬러와 마르코 로이스 등은 빠른 발을 가진 선수들이지만, 이들의 물리적 스피드가 팀 스피드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 역시 볼을 배급할 외질과 크로스의 부진이 크다. 중앙에서 속도가 살지 않다보니 무의미한 패스게임만 펼쳐지고 있다. 창의성과 속도를 더해줄 수 있는 르로이 자네의 엔트리 제외가 아쉬운 부분이다.

수비도 마찬가지다. 멕시코의 빠른 역습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수비 위치 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스웨덴전에서 변화를 택했지만, 안토니오 뤼디거는 불안한 볼처리와 뒷공간 노출로 더 큰 위기를 자초했다. 제롬 보아텡 마저 부상으로 쓰러지며 고민이 커졌다. 킴미히의 뒷공간은 상대의 먹잇감이 되고 있으며, 설상가상으로 노이어도 아직 좋았을 때의 모습을 찾지 못했다. 마츠 훔멜스만이 고군분투하고 있다.

물론 독일은 위기 때 더 강하다. 아무리 지금 좋지 않더라도 우리가 쉽게 승리를 운운할 만한 팀이 아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 독일은 우리가 알던 그 독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부딪혀 보기도 전에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