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는 마음과 마음을 잇는 힘이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시작을 함께 열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6일 독일 베를린 쾨르버재단 초청 연설에서 한반도에 평화의 기적을 빚어낼 '스포츠의 힘'을 역설했다. '베를린 구상'으로 회자된 이 연설은 한반도 평화 정책의 요체일 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가 스포츠를 바라보는 시선이 고스란히 담겼다. 평창올림픽에 북한을 공개 초청하며 남긴 이 메시지는 당시 국제 정세 속에서는 꿈만 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제언, 아니 예언은 7개월 후 현실이 됐다.
2018년 2월, 평창올림픽 현장에서 남북은 하나가 됐다. 개회식 공동입장이 이뤄졌고, 경기장마다 '우리는 하나다' 응원이 파도를 탔다.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남북 여자아이스하키대표팀의 결말은 해피엔딩이었다. 평창은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시작을 열었다. 문 대통령 내외는 평창올림픽 및 패럴림픽 현장을 틈날 때마다 찾았다. 남북을 잇고, 마음을 잇는 스포츠의 힘을 몸소 보여줬다.
평창올림픽을 통해 마음을 나눈 남북은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재회했다. '냉전의 땅' 한반도에 평화의 봄이 도래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평창올림픽에서 시작된 남북 화합의 분위기를 이어갈 체육 교류를 심도 있게 논의했다. 평화의 길을 여는 스포츠의 힘, 남북 정상의 공감대는 일치했다. 판문점선언 1조 4항에 '2018년 아시아경기대회를 비롯한 국제경기들에 공동으로 진출하여 민족의 슬기와 재능, 단합된 모습을 전세계에 과시하기로 하였다'라고 명시했다. 문 대통령이 경평 축구 부활을 제안하자 '농구 마니아' 김정은 위원장은 "축구보다 농구부터 하자"며 '통일농구'를 제안했다.
6월 18일 오전 10시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체육회담은 판문점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첫 걸음이었다. 이번에도 남북은 '체육인의 자부심'으로 통했다. 북측 단장으로 참석한 원길우 북한 체육성부상이 입을 열었다. "판문점선언 후 여러 부문별 회담중에서 우리 체육회담을 가장 먼저 시작한 데 대해 참으로 뜻이 깊다고 생각한다." 남측 수석대표 전충렬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이 화답했다. "체육이 남북 화해의 물꼬를 텄다. 앞으로도 우리가 길잡이 역할을 하자."
남북은 오후 6시까지 8시간 가까이 치열한 마라톤 회의를 이어갔다. 2003년 평양 친선전 이후 15년만의 남북통일농구 부활,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남북 공동 입장의 세부사항에 합의했다. 남북대표단은 이날 오후 7시30분 발표한 공동보도문을 통해 4가지 사항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첫째, 남북은 7·4공동성명을 계기로 3~6일 사이 평양에서 남북통일농구경기를 개최한다. 가을에는 서울에서 개최한다. 평양 경기에 남측은 100명 규모의 남녀선수단을 북측에 파견한다. 경기는 남북선수들의 혼합경기와 친선경기 형태로 진행한다. 둘째, 남북은 2018년 자카르타아시안게임 개폐회식에 공동 입장하며 명칭은 코리아(KOREA), 약어표기는 'COR', 깃발은 한반도기로, 노래는 아리랑으로 한다. 일부 종목에서 단일팀을 구성해 참가한다. 셋째, 남북은 2018년 장애인아시안게임을 비롯해 국제경기에 공동으로 진출하고 남과 북이 개최하는 국제경기들에 참가하며 종목별 합동훈련 및 남북 체육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한다. 마지막으로 남북은 남북통일농구경기, 2018년 아시아경기대회 공동진출을 비롯한 체육 분야에서 제기되는 실무적 문제들을 문서교환 방식으로 계속 협의해나가기로 했다."
문재인 정부의 체육정책, '스포츠비전2030'의 모토는 '사람을 위한 스포츠, 건강한 삶의 행복'이다. 스포츠 비전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체육의 가치 회복, 체육인들의 상처 치유를 염두에 뒀다. 최순실 국정농단 이후 체육계는 사분오열 갈라졌다. 4대악의 온상, 적폐세력으로 치부되며 자존감도 위상도 바닥을 쳤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4월 '대한민국 체육인대회'를 찾아 "국정농단의 출발은 체육 농단이었다. 체육계를 비리집단, 불공정 세력으로 매도하고 탄압했다. 국정 농단으로 누구보다 체육인들의 마음이 아팠다. 제가 공정성을 다시 세우고 체육인들의 자존심을 되찾아드리겠다"고 약속했었다.
평창올림픽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았다. 평창을 통해 스포츠의 가치를 몸소 체감한 정부는 체육을 통한 지속적인 평화의 길을 고민하고 있다. 판문점선언을 통해 체육의 가치를 인정하고, 가장 우선적으로 체육회담을 추진했다. 남북체육회담 직후 단일팀을 논의한 종목에 대해서도 말을 아꼈다. 노태강 문체부 제2차관은 "단일팀 가능성이 있는 종목에 대한 논의는 오갔지만, 선수들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종목단체와 선수들의 의견을 취합한 후 결정할 것"이라며 선수와 체육인들의 의사를 무엇보다 우선시할 뜻을 분명히 했다.
도종환 문체부 장관은 취임1주년을 맞은 지난 15일 지난 1년간 가장 빛나는 성과로 '스포츠'를 언급했다. "평창올림픽을 통해 남북 교류의 문이 열리고, 북미정상회담까지 이어지는 등 문화와 체육이 국가의 운명을 바꾸는 역할을 했다." 마음과 마음을 잇는 스포츠의 힘은 강력하다. 함께 땀 흘리며 하나 된 우정은 언제나 옳다. 남북 평화의 마중물이 된 대한민국 체육인들이 모처럼 어깨를 활짝 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