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 신화요? 아…."
'독수리' 최용수 전 FC서울 감독이 특유의 느릿한 말투로 천천히 입을 뗐다.
2002년, 그라운드 위 태극전사들의 활약에 대한민국은 뜨겁게 환호했다. 벌써 16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그날의 감동은 어제의 일 만큼이나 생생하다. 특히 4년에 한 번 월드컵이 돌아오면 모두들 마음속에 고이 담아뒀던 그때의 기억을 되살린다.
최 감독은 붉은 물결 중심에 서 있었다. 그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 출전해 대한민국의 4강 진출에 힘을 보탰다. 최 전 감독은 "제가 2002년 멤버에 속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참 영광입니다"라며 슬며시 미소지었다.
최용수. 그는 대한민국 스트라이커 계보를 잇는 당대 최고의 공격수였다. 정확한 킥과 파워는 물론, 둘째가라면 서러운 승부욕으로 그라운드를 누볐다. 그래서일까. 최 감독은 세계 청소년 선수권대회, 애틀랜타올림픽, 방콕아시안게임, 프랑스월드컵 등 각종 메이저대회를 섭렵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홈에서 치른 한-일월드컵의 기억은 매우 강렬하다.
▶예상 못한 4강, 믿어야 한다
"솔직히 그때 우리가 4강에 갈 수 있을 것으로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2002년의 시작, 썩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회가 다가올수록 분위기가 달라졌다. 대회 전 치른 평가전에서 스코틀랜드(4대1)을 제압했고, 잉글랜드(1대1)와 무승부를 기록했다. 비록 프랑스(2대3)에 패하기는 했지만, 강팀과의 연전을 통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상당히 많은 시간을 투자해 조직력을 갖췄어요. 그런데 막상 경기가 다가올수록 알게 모르게 말수가 줄어들고, 긴장이 되고, 경직되는 분위기가 있었죠. 국민의 성원을 믿고 첫 경기를 치렀어요. 선수들이 하나가 돼 즐겼고, 국민께서는 큰 힘이 돼 주면서 분위기를 탄거죠. 그게 모여서 4강 신화가 된거죠. 그때는 우리가 4강에 갈 줄은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어요."
▶월드컵, 평생의 기회 '후회 없이 뛰어라'
2018년 여름, 또 한 번 월드컵이 찾아왔다. 하지만 2002년만큼의 열기는 없다. 기대감도 낮다. 한국은 독일, 멕시코, 스웨덴과 한 조에서 경기를 치른다. 일각에서는 '3전 전패'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최 감독은 후배들에게 부담감을 떨치고 자신감 있게 경기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우리 첫 상대가 스웨덴인데, 스칸디나비아 반도 쪽 선수들은 힘과 높이가 좋아요. 게다가 첫 경기는 그 특성상 준비한 것을 100% 발휘 할 수 없어요. 그것을 감안하고 우리는 우리가 준비한 것을 얼마나 자신있게, 투지와 끈기를 갖고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전적은 다 잊고, 대한민국만이 할 수 있는 축구를 보여주면 충분히 박수 받을 수 있어요. 3패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지 말고, 우리를 믿고 나아가면 됩니다."
그는 강인한 목소리만큼이나 열정적으로 월드컵 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일월드컵 국가대표 23인과 지도자들로 구성된 '팀2002' 멤버로 후배들에게 힘찬 기운을 불어넣었다. 또한 각종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월드컵을 알리고 있다. '예능 늦둥이'라는 수식어를 얻을 만큼 광범위한 행보를 펼치고 있다.
최 감독은 "월드컵 관련해서 예능을 해봤는데, 세상에 축구만큼 쉬운 게 없다는 것을 느꼈어요. 월드컵은 평생 한 번 올까말까 한 기회에요. 이런 기회를 흘려보내는 선수가 있고, 잘 준비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선수도 있어요. 2002년 대회가 끝난지 10년도 넘었지만, 아직도 사랑 받고 있잖아요. 그만큼 후회 없이 경기를 했다는 거에요. 우리 후배들도 결과를 떠나 10~20년 뒤에 역사에 남을 만한 경기를 했으면 좋겠어요. 지금의 우리 선수들이 20년 뒤 전설이 될 겁니다"라고 진심을 담아 말했다.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