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월드컵 때도 '1승도 하기 힘들 것'이라고들 했었다. 첫 경기에서 분위기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
'팀 2002 레전드 수비수' 현영민(39)이 2018년 러시아월드컵에 도전하는 신태용호 후배들을 향한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1979년생 왼쪽 풀백 현영민은 지난 시즌까지 전남 드래곤즈에서 띠동갑 후배들과 뜨거운 땀을 흘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멤버 중 가장 오래 그라운드에 남았다. 울산(2002~2009), 서울(2010~2013), 성남(2013), 전남(2014~2017) 등에서 14시즌간 437경기 9골 55도움을 기록하며 범접하기 힘든 K리그 '왼쪽 풀백' 최다 출장기록도 세웠다.
얼굴에 피멍이 들어도 아랑곳 않고 죽을 힘을 다해 뛰는 베테랑의 플레이에는 언제나 뜨거운 감동이 있었다. 90분 내내 강하게 밀어붙이는 수비수의 투지, 전매특허인 초강력 롱스로인과 정확한 택배 크로스, 상대를 농락하는 헛다리 드리블은 오래도록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축구화에 세 아이의 이름을 새기고 달리는 '패밀리맨'의 반듯한 자기관리 역시 그라운드를 떠나는 순간까지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지난 시즌을 마지막으로 현역 생활을 마무리한 현영민은 MBC 해설위원으로 러시아월드컵 현장을 함께 뛴다. 현역 선수 시절 지도자, 심판 연수에 참가하며 지도자, 해설자 등 은퇴 이후 미래를 착실히 준비해왔다. 러시아월드컵 해설을 앞두고 "2002년 멤버로서 지난해까지 현역 최장수 필드플레이어로 그라운드에서 직접 뛴 경험은 해설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러시아월드컵이 불과 열흘 앞으로 다가온 시점, 월드컵 선배로서 현영민은 "16강, 8강 등 성적도 중요하지만 우리 선수들이 투혼을 다했을 때 국민들은 언제든 박수를 쳐줄 준비가 돼 있다"며 후배들을 독려했다. "2002년에도 우리가 1승을 못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시선이 많았다. 4강은 당연히 기대도 안했다"고 16년 전을 떠올렸다. "첫 경기를 잘하다 보니 다음 경기도 잘 풀렸고, 그렇게 분위기를 타서 16강, 4강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해설위원으로서 현영민은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듯이 스웨덴과의 첫 경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첫 경기를 진다고 해서 실패로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 첫 경기는 가장 중요하다. 첫 단추를 잘 꿰어서 남은 2경기를 좀더 편안하게 치르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16강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현영민은 시련 속에 희망을 노래했다. "나도 유럽축구를 경험해 봤지만 유럽의 벽은 대단히 두텁다. 하지만 축구는 머리에서 가장 떨어진 발로 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이변도 가장 많다. 우리 선수들이 초반 분위기를 잘 잡고, 자신감을 얻다 보면 좋은 결과가 뒤따르지 않을까."
현영민은 대표팀 선배의 입장에서 월드컵을 앞두고 후배들에게 쏟아지는 축구팬들의 질책과 비난이 안쓰럽다고 했다. "월드컵은 전국민적인 응원의 힘을 받아도 부족한 대회다. 대표팀 후배들이 비판 받고 신태용 감독님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성과를 인정받지 못한 부분을 보면서 많이 안타까웠다"고 털어놨다. 현영민을 비롯 김병지, 최용수, 안정환, 이운재, 김태영, 최성용 등 '팀2002' 선배들이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 상암벌, 풋살 친선전에 총출동해 응원의 마음을 모은 이유다.
현영민은 후배들의 러시아월드컵을 향한 국민적 응원을 거듭 당부했다. "월드컵은 이제 시작이다. 국민 여러분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 월드컵은 축제다. 온 국민의 축제다. 저녁, 밤 시간에 경기가 열린다. 함께 모여 경기를 시청하고, 목청껏 응원하면서 축제를 즐기시면 좋겠다"고 했다. "우리 모두의 월드컵이다. 월드컵이 잘 돼야 K리그, 한국 축구도 잘된다. K리그를 통해 성장한 후배들이 러시아월드컵을 잘 치러서 다시 대한민국 축구의 붐을 일으켜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