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넥센 히어로즈의 팬이라면 이미 제목을 본 순간부터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피어 오르는 애잔함을 느낄 것이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그 감정은 측은함에 가까울 수도 있다. 또한 다른 구단의 팬이라면 애잔함 보다는 '그게 사실이야?' 정도의 놀라움과 어이없음으로 기록을 다시 찾아보게 될 지도 모른다.
올 시즌 도무지 승리와는 인연이 없는 넥센 히어로즈 외국인 투수 제이크 브리검에 관한 이야기다. 브리검에게 승리란 마치 뜨거운 사막을 헤매다 지쳐 쓰러지기 직전 겨우 만나는 오아시스 같다. 올해 12경기에 선발 등판해 겨우 2승(4패) 밖에 거두지 못했다. 개막 이후 2개월이 넘도록 겨우 2승. 이 기록만 보면 너무 부진한 투수처럼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브리검은 그렇게 평가될 수 없는 투수다. 실력만 놓고 보면 당장 어느 팀에 가더라도 원투펀치 안에 포함될 수 있는 안정적인 선발 투수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도무지 '승리'와는 인연이 없다는 점. 아무리 빼어난 호투를 펼치더라도 끝내 승리 투수의 타이틀을 따내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오히려 패전투수의 멍에를 쓰는 날이 더 많을 정도다. 기록을 살펴보면 절대 브리검을 탓해선 안된다는 걸 알 수 있다.
일단 투수의 기량을 알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척도인 평균자책점(ERA)을 보자. 그는 1일까지 12경기에서 76⅔이닝을 던져 31자책점을 허용해 3.64의 ERA를 기록 중이다. 이는 올해 규정 이닝을 채운 투수 중 9위에 해당한다. KBO리그 전체 선발 투수 중에서 9번째로 경기당 점수를 적게 내줬다는 뜻이다. 이닝당 출루허용률(WHIP)도 1.30으로 리그 전체에서 공동 9위다.
게다가 브리검은 대표적 이닝 이터다. 그가 12경기에서 던진 76⅔이닝은 리그 전체에서 5번째로 많은 숫자다. 나올 때마다 평균적으로 6⅓이닝 정도는 꾸준히 소화해줬다는 계산이 나온다. 12차례 등판에서 총 8번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 이하)를 했고, 그 중 3번은 퀄리티스타트 플러스(선발 7이닝 이상 3자책 이하)를 기록했다.
이런 기록들이 정의하는 브리검은 '나올 때마다 적어도 6이닝은 안정적으로 소화해주는 선발'이다. 하지만 이 숫자들에 '운'은 포함되지 않았다. 잘 던지면서도 승리를 못 따내거나 역으로 패전투수로 전락하고 마는 일이 계속 나오고 있다. 이제는 팀 동료들이 미안함에 슬슬 눈치를 볼 정도다. 지난 1일에도 잠실구장에서 홈팀 LG 트윈스를 상대로 8이닝을 3실점으로 완투했지만, 패배만 떠 안았다. 그에 앞서 3연속 QS 기간에도 단 1승만 챙겼다. 5월15일 KIA전때는 8이닝 동안 1실점만 하고서 패전투수가 됐다.
이렇게 브리검은 올해 12번의 등판에서 2승밖에 얻지 못했다. 그 결과 승수에서는 KBO리그 투수중 고작 48위(공동)에 머물고 있다. 심지어 1일 맞대결을 펼쳐 시즌 6승(4패)째를 따낸 LG 차우찬의 평균자책점은 5.29나 된다. 브리검(3.64)보다 무려 1.65나 더 높다. 바꿔 말하면 브리검도 운이 실력만큼만 따랐다면 적어도 3~4승은 더 따낼 수 있었다는 뜻이다.
넥센 장정석 감독은 "브리검만 보면 안타까워 죽을 지경이다. 타자들도 모두 비슷한 생각일 것"이라며 "기본적으로 잘 던지고 있어서 변화를 주기도 쉽지 않다. 브리검이 스스로 이럴 때일수록 기가 죽지 않았으면 한다"는 부탁을 전했다. 과연 브리검은 언제 쯤 실력대로 승수를 쌓아나갈 수 있을까.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