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독주? 울산이 대안이 돼야 한다."
5월 중순, 울산월드컵경기장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카페에서 만난 김광국 울산 현대 단장(51)은 나직하지만 강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김 단장은 1994년 현대그룹에 공채 입사한 후 25년째 한길을 달려온 '현대맨'이자 22년간 홍보 업무에 잔뼈가 굵은 소통 전문가다. 2000년부터 2014년까지 현대중공업 서울홍보실 재직 시절, 주말마다 총 200회가 넘게 울산을 오가며 울산 현대의 모든 경기를 지켜봤다. 권오갑 전 단장(현대중공업 부회장) 곁에서 축구단 안팎 살림살이를 챙기고 보고하는 업무를 도맡았다. 2014년 11월 울산 현대축구단장(상무보)에 보임된 그는 울산 현대를 누구보다 잘 알고, 누구보다 아끼는 행정가다. "울산은 한국축구, 대표팀을 20~30년 책임있게 이끌어온 구단이다. 울산 현대 축구단장이라는 사실은 자랑스럽고 행복하다. 축구단장은 정말 영광된 자리"라며 남다른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다.
김 단장은 3년차인 지난해 FA컵에서 첫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4년차인 올해 주니오, 박주호 등을 잇달아 영입하는 공격적 투자로 주목받았다. 3월 개막전 후 4연패 시련을 겪었던 울산은 4월 이후 월드컵 휴식기까지 리그 10경기 무패를 달렸다. 김 단장은 "올시즌 울산은 슬로스타터였다. 4월 이후 정상궤도에 진입했고 6년만에 아시아챔피언스 16강에도 진출했다. 우리는 뒷심 강한 구단이다. 두고보라. 뒤로 갈수록 점점 강해질 것"이라며 자신감을 표했다. "공격적인 선수 영입을 통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앞으로도 기대감을 주는 팀이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1강' 전북의 독주를 견제할 팀, K리그 리딩구단으로서의 책임감을 드러냈다. "스포츠의 매력은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불가측성에 있다. K리그를 위해서도 전북이 독주하는 구도는 좋지 않다. 경쟁자, 대항마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 울산이 대안이 돼야 한다."
홍보 마케팅 전문가인 김 단장이 부임 후 가장 집중해온 부분은 '팬'이다. "우리는 프로다. 프로의 생명은 팬"이라고 했다. 인터뷰 내내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 역시 "팬"이었다. 김 단장은 "특히 어린이 팬에게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축구 보는' 세살 버릇은 여든까지 간다. 3월부터 울산광역시교육청, 현대오일뱅크,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울산지역본부, 축구사랑나눔재단과 손잡고 '반갑다 축구야' 캠페인을 적극 전개하고 있다.
김 단장은 "울산에 116개 초등학교, 6만여 명의 어린이들이 있다. 이들이 1년에 한번은 문수경기장에 오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1학년 입장료가 3000원이데, 후원사 현대오일뱅크의 도움으로 1학년 1만 명에게 시즌권을 입학선물로 줬다. 선물만으로는 오지 않는다. 발로 뛰어야 한다. 다가가야 한다"고 했다. 울산 프런트와 선수단은 3월부터 등굣길에서 어린이들을 직접 만났다. 4월 등굣길 캠페인 횟수만 31회, 1만9403명의 어린이들을 만났다. 김 단장은 "절대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다. 이들이 순도 높은 팬이 되기 위해서는 수년의 세월이 필요하다"고 했다. "월드컵 휴식기와 7월 말까지 등굣길, 길거리 홍보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홈경기 전날이면 삼산동, 성남동 등 번화가에 울산 마스코트 호랑이탈을 쓰고 길거리 홍보에 나선다. 김 단장은 "울산시민 120만 명 중 20만 명이 1년에 한번씩만 오면 목표관중 1만 명을 채울 수 있다"고 했다. "그냥 지나치는 시민도 많다. 거리에서 만나는 이들 중 한 사람도 오지 않을지 모른다. 그래도 우리가 매주 거리에 나서는 이유는 한 사람의 팬이 얼마나 소중한지 몸소 배우기 때문이다. 욕하는 단 1명의 팬도 구단 입장에선 너무너무 소중하다"고 말했다.
'동해안 라이벌' 포항의 관중 증가도 예의주시했다. "1년 넘게 최순호 포항 감독이 조기축구회를 찾아 '최순호를 이겨라' 이벤트를 하고 있다. 라이벌팀이지만 배울 점은 배워야 한다. 우리 김도훈 감독도 적극적이다. 한달에 2번씩 '김도훈과 놀자' 등 지역 생활축구인들과의 밀착 마케팅을 계획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희망을 노래하던 그가 문득 '아픈' 이야기를 꺼냈다. "모기업 현대중공업이 어려운 시기다. 나는 1994년 입사 이후 2014년 임원이 될 때까지 20년간 행복했다. 국위선양하는 세계 최고 기업에서 일하는 자부심도 강했다. 최근 모기업이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조 단위 손실도 보면서 노조에서 축구단을 '돈 먹는 하마' 식으로 언급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가 먼저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현대중공업 산하에 맨유나 레알마드리드 같은 축구단이 있다면 '해체' 이야기를 그렇게 쉽게 할 수 있었을까"라고 반문했다. "축구단은 회사가 힘든 때일수록 필요하다. 그라운드에서 스트레스를 푼다. 구성원들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통로가 된다. 우리가 국민들과 직원들에게 더 사랑받는 구단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더 강하게 하게 됐다"고 했다. 마라톤 풀코스를 13번이나 완주했다는 '철인' 김 단장은 요즘도 일주일에 50㎞를 달린다. 달리는 내내 어떻게 하면 팬들에게 사랑받는 축구를 할까, 어떻게 하면 단 1명의 팬이라도 더 오게 할까 궁리한다.
김 단장은 5월 5일 어린이날, 포항과의 '동해안 더비'에서 미소 지었다. 1만2701명의 팬이 경기장을 찾았다. 이날 '슈퍼매치' 서울-수원전(2만9617명)을 제외하고 최다 관중이었다. "구단 직원들이 발로 뛴 결과"라며 감사를 표했다. "우리는 홈경기 때마다 가족 관중을 위한 5시간 페스티벌을 기획한다. 게이트 오픈 후 2시간 '버스킹' 등 축제를 즐기고, 2시간 축구 보고, 경기 후엔 수훈선수들과 '1시간 뒤풀이'를 즐긴다. 일반 팬의 관점에서 더 재미있는 것은 없을까 늘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평균 8000명의 관중을 일단 1만 명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1차 목표다. "2~3년 내에 평균관중 1만 명, 입장료 수입 20억 원이 목표다. 전북처럼 관중석을 가린 통천을 시원하게 걷어내고 싶다. 그 공간이 우리 울산 팬들의 푸른 물결로 가득 찰 날을 꿈꾼다." 울산=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