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에서 지난해까지 통산 300홈런을 친 타자는 9명, 통산 2000안타를 날린 타자는 10명이다. 이들 가운데 두 기록을 모두 달성한 선수는 둘 밖에 없다. 이승엽과 양준혁이다. 이승엽은 통산 467홈런으로 이 부문 1위이고, 통산 2156안타를 쳐 이 부문 3위에 올라 있다. 양준혁은 통산 351홈런으로 이승엽에 이어 이 부문 2위, 통산 안타 2318개는 1위다.
출범 37년째인 KBO리그에서 300홈런과 2000안타를 모두 돌파한 선수가 둘 밖에 없다는 건 그만큼 희소가치가 높다는 걸 의미한다. 훗날 명예의 전당이 생긴다면 타자 중 이승엽과 양준혁은 헌액 1,2순위로 거론될 게 분명한다.
이른바 '300-2000클럽'이다. 클럽 개설자는 양준혁이다. 양준혁은 2006년 5월 3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통산 300홈런을 날렸다. 장종훈 이승엽에 이은 세 번째 300홈런 타자가 됐다. 1년 뒤인 2007년 6월 9일에는 잠실구장에서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KBO리그 최초로 2000안타 고지를 밟았다. 2007년 6월 9일은 300홈런-2000안타 클럽이 만들어진 역사적인 날이다. 이승엽은 일본에서 돌아온 후 5번째 시즌인 2016년 9월 7일 대구 KT 위즈전에서 통산 2000안타를 치며 두 번째로 클럽 가입자가 됐다.
조만간 300-2000클럽의 세 번째 회원이 등록될 전망이다. 한화 이글스 김태균이다. 김태균은 24일 대전 두산 베어스전까지 통산 299홈런, 1991안타를 기록했다. 홈런 1개, 안타 9개가 남았다. 빠르면 이 달, 늦어도 6월 초에는 클럽 회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타격감이 상승세라 기록 달성 시점이 그리 멀어 보이지는 않는다. 이날 두산전까지 최근 6경기 연속 안타를 쳤고, 22일과 23일에는 팀 승리를 이끄는 결정적인 홈런을 잇달아 터뜨렸다. 최근 장타력을 감안하면 2000안타보다는 300홈런이 먼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뭐가 먼저든 300-2000클럽의 첫 오른손 타자가 된다.
김태균은 지난 3월 31일 SK전에서 손등에 사구를 맞고 1군에서 말소됐다가 4월 19일 돌아왔다. 복귀 초에 다소 주춤했지만 4월 말 감을 되찾으며 안타와 홈런을 폭발시키고 있다. 4월 27일 롯데전부터 치면 이후 22경기에서 멀티 히트 게임을 11번 했고, 홈런은 5개를 추가했다. 부상으로 빠진 사이 외국인 타자 제라드 호잉에게 4번 자리를 빼앗겼지만, 지금은 오히려 5번 타순에서 안정적으로 공격을 이끌고 있다.
소위 '이름값'이라고 한다. 'brand value'다. 김태균이라는 브랜드를 통해 팬들이 바라는 활약상이 있는데, 그에 부합한다면 '이름값'을 해내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다. 톱클래스 선수에게만 붙여지는 '이름값'을 놓고 보면 김태균은 KBO리그를 대표한다고 봐야 한다. 그 위치가 이제는 이승엽, 양준혁에 버금간다. 통산 300홈런-2000안타는 그런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김태균은 최근 몇 년간 '똑딱이'로 불렸다. 4번 타자에게 시원한 홈런을 기대하는데, 김태균은 홈런보다는 단타 이미지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앞서 2003년과 2008년, 각각 31홈런을 때리면서 만들어진 거포 이미지를 일본에서 돌아온 뒤에는 회복하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홈런이면 어떻고 단타면 어떤가. 이름값을 하고 싶으면 찬스에서 주자를 불러들이면 되는 일이다.
김태균은 23일 결승 홈런을 터뜨린 뒤 "시즌 초반 부진했을 때 팬들과 팀, 가족에게 미안했다. 조금씩 감이 좋아지고 있고, 더 잘해서 모두에게 웃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또 "타격감은 아직 완벽하지 않아 지난 월요일에는 특타를 했다. 쉬는 날 나와서 도와준 전력분석팀에 고맙고,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도 했다. 김응용 감독은 한화 시절 "태균이가 30홈런을 치면 홈런 세리머니를 함께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당시 김태균은 "팀과 동료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미안한 마음', '고마운 마음'을 늘 마음에 담고 그라운드로 나서야 하는건 '이름값' 높은 선수들의 숙명이다. 김태균이 300-2000클럽에 가입하는 날 또 어떤 얘기를 할 지 벌써 궁금하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