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희 흥국생명 감독과 뗄 수 없는 수식어는 '최초'다.
2014년 흥국생명 '최초'의 여성 감독으로 부임한 박 감독은 유리천장을 깨부쉈다. 2015~2016시즌 여성 감독 '최초'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다음 시즌은 더 찬란했다. 당당히 정규리그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4대 프로스포츠를 통틀어 여성 감독이 우승을 차지한 것은 박 감독이 '최초'였다.
박 감독 커리어에 또 하나의 '최초'를 추가했다. 무대는 배구장이 아닌 골프장이었다. 박 감독은 24일 경기도 여주시에 위치한 솔모로CC에서 열린 제6회 배구인 자선 골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여성 배구인이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은 '최초'다. 스포츠조선이 주최하고 2017~2018시즌 남녀부 우승 팀인 대한항공과 한국도로공사가 후원한 이번 대회에는 전 현직 배구 사령탑, 은퇴한 배구 스타들, 구단 및 연맹, 스폰서 관계자 등이 모여 평소 갈고 닦은 골프 실력을 겨뤘다.
박 감독은 이날 홍일점이었다. 박 감독은 대회 전부터 여성 배구인을 섭외하려고 여기저기 전화를 돌렸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V리그의 유이한 여성 감독인 이도희 현대건설 감독은 골프를 치지 않아, 오전 인사만 하고 떠났다. 박 감독은 결국 여자부를 이끄는 김종민 도로공사 감독, 이정철 IBK기업은행 감독, 서남원 KGC인삼공사 감독과 함께 동반 라운딩을 했다. 평소 자주 골프를 즐기지는 않지만 80대를 치는 박 감독의 샷은 이날 유독 빛났다. '전년도 챔피언' 서남원 감독은 "남자 감독 3명이 여자 감독 1명에 쩔쩔 맸다"고 혀를 내둘렀다. 이날 박 감독은 그로스 스코어 83타를 기록했지만 '신페리오 방식(파의 합계가 48이 되도록 12홀의 숨긴 홀을 선택해 경기 종료 후 12홀에 해당하는 스코어 합계를 1.5배하고 거기에서 코스의 파를 뺀 80%를 핸디캡으로 하는 산정 방식)'에서 네트 스코어 68.2타를 기록했다.
부상으로 43인치 TV를 받은 박 감독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주변에서 남자 감독들이 편하게 칠 수 있게 도와주셨다. 혼자여서 민망했는데 오길 잘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지난 시즌 최하위에 머물렀던 박 감독은 올 시즌 또 한 번의 비상을 꿈꾸고 있다. 자유계약으로 베테랑 센터 김세영과 국가대표 출신의 김미연을 데려왔다. 외국인 드래프트에서도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던 톰시아를 뽑았다. 외국인선수와 높이에서 아쉬움을 보였던 흥국생명은 단숨에 약점을 해결하며 다음 시즌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박 감독은 "계속 좋은 기운이 따르는 것 같다. 이 기운이 다음 시즌 성적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웃었다.
준우승은 그로스 스코어 72타, 네트 스코어 68.4타를 친 마낙길 전 해설위원에게, 3위는 그로스 스코어 89타, 네트 스코어 72.2타의 신치용 전 삼성화재 단장에게 돌아갔다. 실타수 기준인 메달리스트의 영예는 배구계 골프 1인자로 소문난 이경석 여자대표팀 2군 감독이 차지했다. 이 감독은 69타를 기록하며 5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차지했다. 이번 대회 최고의 장타자에는 장윤창 경기대 교수가 선정됐다. 장 교수는 현역시절 트레이드마크인 돌고래 스파이크처럼 호쾌한 드라이버샷을 선보였다. 비거리는 300야드. 장 교수는 드라이버를 품에 안았다. 니어리스트는 강만수 전 우리카드 감독이 차지했다. 홀컵 1.5m에 붙이는 정교한 아이언샷을 뽐냈다. 사실 이경석 감독이 0.8m의 기록을 세웠지만 중복 수상이 안되는 관계로 강 감독이 행운의 드라이버를 거머쥐었다.
2013년 프로배구 10주년 행사로 첫발을 뗀 배구인 자선 골프대회는 단순한 골프 행사에 그치지 않았다. 대회에 참가한 배구인들이 유소년 배구 발전을 위해 자선 기금을 마련했다.
여주=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