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너무 이기려고만 했던 것 같아요. 언젠부턴가 '이기면 좋고 지면 할 수 없고~'란 식으로 생각을 바꿨더니 마음이 많이 편해졌어요."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다. 바둑이 특히 그렇다. 상대가 눈 앞에 있어서 이겨도 웃을 수 없고 져도 울 수 없다. 감정을 숨기고 복기(復棋)를 해야 한다. 이래저래 평정심이 중요하다. 지난 12일 끝난 제7회 천태산배에서 홀로 3승을 거두며 한국의 우승을 이끈 김채영 4단은 '허심(虛心)'에 주력한 것이 요즘 상승세를 타고 있는 비결인 듯 하다고 운을 뗐다.
김채영 4단은 최근 발군의 기량을 과시해왔다. 한국여자바둑리그에서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25연승의 대기록을 세웠고, 올해 여류국수전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또 국가대항전인 천태산배 우승을 이끌었으며, 무엇보다 오는 7월 예정된 제1회 오청원배 세계여자바둑대회 결승에 올라 최정 9단과 맞대결이 예정되어 있다. 한창 액셀을 밟는 중이다. 한국여자바둑에서 최정 9단과 오유진 5단의 2강 체제를 '빅 3' 구도로 바꾼 주인공이 바로 김채영 4단이기도 하다.
차분한 외모와 달리(?) 김 4단은 '욕심쟁이'다. "어릴 때부터 승부욕이 정말 강했어요. 왜, 지고 나면 울고 불고…, 억울해서 잠 못 자는 스타일 있잖아요?(웃음)"
얼마 전 심리테스트를 받았는데, 역시나 '성취지향형'으로 나왔다. 승부욕이 강한 것은 좋은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 있는 유형이란다. "맞아요. 솔직히 지는 게 두려웠어요. 어릴 때는 경기 전에 긴장도 많이 되고, 갑자기 배가 아프기도 하고…, 바둑리그에서도 상대팀 에이스랑 대진표가 짜이면 속으로 '아, 어떡해…' 걱정이 앞서곤 했어요."
겉으로 보기엔 강철의 승부사였지만 속으로 부담이 컸던 그녀였다. "바둑리그에서 연승을 하면서 조금씩 자신감이 붙더라고요. 20승이 넘어가자 저도 조금씩 기록을 의식하게 됐는데, 그때 갑자기 신기하게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언젠가는 끊길 거니까 그냥 편하게 두자, 오늘 지면 할 수 없고 이기면 '땡큐'지 뭐~'."
김채영 4단의 당면 최고 과제는 7월의 오청원배 결승이다. 외나무다리에 만난 파트너는 공교롭게도 상대 전적 9전 전패인 동갑내기 라이벌 최정 9단이다. "실력 차이죠. 하지만 지금은 많이 좁혔다고 생각해요. 편한 마음으로 대국에 임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믿습니다."
김 4단은 중국의 최강자 위즈잉 6단에게도 4연패를 당하다 2승을 올린 경험이 있다. "신경이 많이 쓰였는데 한 판 이겼더니 자신감이 붙더라"며 눈을 반짝인 김 4단은 "저와 위즈잉은 비슷한 집바둑 스타일이고 (최)정이는 한 방이 있는 스타일이에요. 위즈잉이 정이한테 이겼던 기보도 이번에 꼼꼼히 봐야겠어요"라며 활짝 웃었다.
김채영 4단은 부친 김성래 5단, 여동생 김다영 3단과 함께 세계 유일의 3부녀 가족 기사로도 유명하다.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