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비'가 막 그친 4월의 끝자락. 배낚시체험을 위해 제주시 소재 이호해변을 찾았다. 제주 공항 인근 도두봉 지척에 자리한 이호해변은 부챗살처럼 펼쳐진 너른 해변을 품고 있어 제주토박이들 사이 호젓한 해수욕의 명소로 알려진 곳이다. 특히 이호 해수욕장은 최근 들어 서핑 붐이 불면서 파도를 즐기려는 마니아들이 즐겨 찾는 해변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이곳은 김녕, 자구내포구, 표선해변 등과 더불어 싱싱한 제주 바닷고기의 손맛을 즐길 수 있는 배낚시 체험명소로도 통하는 곳이다. 1인당 2만원 만 내면 낚시도구 일체를 대여해주며 2시간 동안 바다배낚시를 즐길 수 있으니 제주도를 찾는 이들에게는 인기 이색 체험 레포츠가 되고 있다. 제주=글·사진 김형우 관광전문 기자 hwkim@sportschosun.com
낚싯배 승선에 앞서 간단하게 인적사항을 적어 내고 '이호털보 마린호'에 올랐다. 4.43톤 낚싯배 정원은 11명. 이날은 선장(김지현·64·이호털보배낚시 대표)을 포함해 승선인원이 7명이다. 마침 비가 그치고 바람이 좀 부는 날이라 손님이 적은 편이었다. 출항에 앞서 먼저 선장의 지시로 구명조끼부터 챙겨 입었다. 최근 몇년 사이 일련의 해상안전사고 등을 통해 일반의 구명조끼 착용에 대한 인식이 아주 높아졌다는 게 김 선장의 귀띔이다.
부두를 빠져 나온 털보마린호는 15분가량 파도를 헤치며 도두봉이 바라다 보이는 해안으로 이동했다. 가까운 연안이지만 제법 너울이 있는 날이다 보니 생각보다 항해가 길게 느껴졌다.
낚시 포인트에 이르자 배가 멈춰 섰다. 닻을 내리는 대신 조류의 저항을 이용한 수중낙하산을 펼쳤다. 그래야만 황금어장 일대를 서서히 움직이며 손맛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얼굴에 수염이 많아서 '털보'라는 별명도 갖게 됐다는 김지현 선장은 30년 낚싯배 운영의 고수다. 일행에게 낚싯대와 면장갑, 미끼 등을 나눠주고 배낚시 요령을 들려줬다.
"미끼는 꼬리에서 머리 쪽으로 바늘에 끼워 주세요. 그리고는 낚싯줄이 더 이상 내려가지 않을 때까지 충분히 풀어 주세요. 이곳 평균 수심은 24m입니다."
오늘 잡을 대상어는 우럭, 놀래기, 쥐치 등 잡어들이다. 정착성 어종이 주가 될 테니 물고기들이 서식하고 있는 바닥까지 미끼를 드리워야 하는 것이다.
이날 일행은 총 3팀이었다. 서울에 사시는 부모님을 모시고 왔다는 제주도 정착 사업가 유민성씨(48), 외지에서 놀러온 친구와 함께 한 제주도 토박이 오경훈 씨(43), 그리고 체험에 나선 기자 등이다.
본격 낚시에 앞서 일행 중 한 사람이 선장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고기를 많이 잡습니까?" 이에 김 선장은 "제가 시키는 대로만 하시면 됩니다. 가끔 그렇지 않는 분들은 재미를 못 보십니다."
부푼 기대감으로 낚싯대를 드리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초반 조과가 신통치 않았다. 그러자 일행들은 "물 반 고기 반 이라더니 잘 안 잡히네" 실망의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김 선장은 오늘 날씨 탓에 수온이 차가워서 물고기들의 움직임이 활발치 않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평소보다 더 멀리 나오 만큼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 했다. 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김 선장이 드리운 낚싯줄이 팽팽해졌다. 보리멸이었다. 처음 도착한 포인트는 모래바닥이어서 보리멸 등이 주로 잡히는 곳이다. 조류를 타고 배가 서서히 바위 지대로 움직이게 되면 우럭 등이 잡힐 차례다.
제주 물고기들도 필시 사람 차별을 하는 듯 했다. 그 다음 번에도 역시 김 선장이 손맛을 봤다. 이번엔 싱싱한 고등어 세 마리 였다. 자그마한 몸집의 고등어는 '성미가 급하다'는 속설을 증명이라도 하듯 바닷물이 담긴 양동이 속에서 조차 잠시도 가만히 있질 않았다. 힘차게 요동치며 이내 물 밖으로 뛰쳐나오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이후 부모님을 모시고 온 유민성 씨가 불그스름한 기운을 띤 어른 손바닥만 한 우럭을 나꿔 챘다. 그 후로는 노부부가 번갈아 우럭으로 손맛을 보며 "우리사 이래봬도 왕년에 동해로, 거제로 낚시 좀 하고 다녔소"라며 실력을 자랑했다. 이에 뒤질세라 친구와 함께 낚싯배에 오른 오경훈 씨도 우럭으로 신고를 했다. 어린 전갱이 새끼는 방생을 해주는 여유도 부렸다.
다소 쌀쌀한 날씨에 자칫 우울할 뻔 했던 낚싯배 분위기는 일순에 화기애애해졌다. 하늘도 때를 맞춰 여우볕을 내며 분위기를 돋웠다.
일행이 손맛 보는 재미에 빠져 있는 동안 배는 쉼 없이 너울에 출렁였다. 이날 파고는 1.5m 가량. 뱃사람들이야 이 정도면 물결이 잔잔하다고 여기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 배멀미라는 복병을 피할 수 없을 듯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배멀미 증세에 낚싯대를 놓고 괴로워했다. 다행히 나머지 체험객은 괜찮아 보였다. 이들은 이미 승선 1시간 전에 배멀미약을 복용한 덕분이다. 기자는 배멀미약을 복용하지 않았다. 그간의 고깃배 취재경험을 믿으며 대신 선글라스를 준비했다. 낚시나 항해 중 선글라스는 눈부심을 막아줘 배멀미 증상을 덜어준다. 또 사진 촬영을 하면서도 일부러 시선을 멀리 두려 애썼다. 제주 공항 인근이다 보니 가끔은 이착륙하는 비행기를 바라보거나 멀리 도두봉을 쳐다보는 등 나름의 방식으로 배멀미를 피할 수 있었다.
괴로워하는 일행을 두고 계속 손맛을 즐길 수는 없었다. 체험에 나선지 1시간 30여 분만에 포구로 귀항했다. 돌아오는 이들의 표정은 밝았다. 제주 청정바다에서 손맛을 즐긴 뿌듯함에, 그리고 배멀미의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게 됐다는 안도감 때문이다.
각자가 잡은 물고기는 포구 인근 식당에서 1만 원을 내면 횟감으로, 매운탕으로 미각을 즐길 수도 있다. 얼큰한 우럭 사촌 '솔치' 매운탕으로 속을 달래자니 뱃속도 한결 편안해졌다.
▶배낚시체험 정보
◇배낚시체험=주간 2만 원, 야간 4만 원(각 2시간, 1인 기준). 요금에는 낚싯대, 미끼, 낚시 줄, 뽕돌, 승객 안전 보험료 등이 포함돼 있어 빈 몸으로 와서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이용시간=평일 오전 5시~오후 10시(날씨, 예약 상황 등에 따라 유동적)
◇야간 낚시=여름: 한치낚시, 초가을~가을: 갈치낚시
◇먼 바다낚시=돌돔, 감성돔, 부시리 등 고급어종 대상.
※배낚시체험 관련 더 자세한 정보는 제주도 공식 관광정보 포털 '비짓제주(http://www.visitjeju.net/)'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