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명종 15년, 도적 떼가 한양의 밤거리를 들쑤신다. 이 범죄 조직이 나타난 곳은 바로 청계천 장통교 인근. 임금이 지내던 창덕궁까지의 거리는 단 1.1km. 궁궐 코앞까지 출몰한 도적 떼 소식에 조정은 공포에 휩싸인다. 이 위협적인 도적 떼의 우두머리는 바로 백정 임꺽정이었다.
임꺽정, 그는 예사 도적과 달랐다.
개성부의 포도관 이억근은 평상시 도적을 추적하여 체포하는 일에 힘을 다하였기에, 도적들의 미워하는 바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임꺽정을 추적하여 체포할 즈음에 뭇 도적의 노리는 바가 되어 죽임을 당하였는데
-<명종실록>, 명종 14년 4월
도적이 포도관을 죽인 건 조선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 심지어 이억근은 도적 수십 명을 잡은 베테랑 포도관이었다. 임꺽정은 포도관 이억근을 살해한 사건으로 실록에 처음 등장하게 되고, 3년 동안 나라의 추격을 받게 된다. 대신과 임금이 '적국(敵國)'으로까지 지목한 도적 임꺽정! 그런데 기록 속 임꺽정은 의적도 아닐뿐더러,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알 수 없다. 소설 <임꺽정>의 의적 이미지가 사실처럼 굳어진 것이라는데…. 그래서 준비했다. 임꺽정 용의자들, 나오시오!
임꺽정은 왜 도적이 되었나?
임꺽정은 백정이었다. 조선시대에 천한 취급을 당한 백정들은 자신들만의 집단거주지를 형성하거나 유랑하는 '조선의 집시'로 살았다. 임꺽정이 살던 황해도 봉산 일대는 갯벌이 많아 농사를 짓기 힘들었다. 임꺽정은 고리백정으로, 갯벌 지대의 갈대를 엮어 바구니를 만들며 생계를 이었다. 그런 그가 도적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누가 임꺽정 같은 백정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 것일까? 백정들의 생계 수단인 갈대밭을 빼앗은 권세가와 왕실 척신들, 나아가 내수사! 임꺽정이 갈대밭을 빼앗기게 된 경위 그리고 그의 최후의 선택은?
국가를 위협한 진짜 도적은 누구?
끔찍한 수탈에 못 이겨 도적이 된 임꺽정. 관군의 대대적인 추포 작전에도 신출귀몰 싸워 이기던 그는 명종 17년 1월 체포되었다는 기록과 함께 역사 속으로 조용히 사라진다.
당시 임꺽정을 비롯한 백성들의 분노는 임금을 향했을까? 아니다. 조선시대 백성에게 임금은 절대적인 존재였다. 이들을 직접 억압하던 지방 수령들이 분노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포도관을 죽인 임꺽정은 정말 국가를 위협한 도적일까?
"도적이 불처럼 일어나는 것은 수령의 가렴주구 탓이며, 수령의 가렴주구는 재상이 청렴하지 못한 탓이다. (중략) 백성들은 곤궁해져도 하소연할 곳이 없으니, 도적이 되지 않으면 살아갈 길이 없는 형편이다. 그러므로 너도나도 죽음의 구덩이에 몸을 던져 요행을 바라고 겁탈을 일삼으니, 이 어찌 백성의 본성이겠는가."
-<명종실록>, 명종14년 3월
조선의 정치 기강의 문란과 군정의 해이, 진짜 도적은 바로 책임을 다하지 못한 위정자들이었다. 백성들을 도적으로 내몬 중앙의 권세가와 탐관오리들에게, 임꺽정은 썩은 물에 대한 민(民)의 경고가 아니었을까?
임꺽정이 활동했던 조선의 참혹했던 그날, 5월 6일 일요일 밤 9시 40분 KBS 1 TV <역사저널 그날> '백정 임꺽정, 임금을 노렸나?' 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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