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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양용은이 말하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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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반가운 이름이 화제가 됐다.

베테랑 골퍼 양용은(46). 최경주와 함께 한국남자골프를 대표하는 살아있는 전설이 실로 오랜만에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29일 일본프로골프(JGTO) 더 크라운스 우승. 2010년 10월 코오롱 한국오픈 이후 무려 8년여 만이자, 일본투어에서는 2006년 9월 산토리 오픈 이후 11년 7개월 만에 거둔 통산 5승이었다.

대회를 마치기 무섭게 그는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피로와 기쁨이 아직 덜 풀렸을 이튿날 점심, 여의도에서 취재진을 만났다.

'타이거 킬러', '바람의 아들', '불굴의 골퍼'… 양용은이란 이름 석자 앞에 붙는 수식어들이다. 그의 역동적인 골프인생을 상징한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에서 그 누구도 못해본 메이저 우승이란 최고의 영광을 누렸고, 미국, 유럽, 일본 등 경험하지 않은 무대가 없을 만큼 산전수전 다 겪은 마스터급 선수. 3일 남서울cc에서 개막하는 GS칼텍스 매경오픈 참가를 위해 돌아온 그가 담담하게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이야기 했다.

▶Yesterday - "우즈? '어차피 질건데' 했더니…"

그의 골프 인생은 한편의 스토리다. 제주도 출신인 그는 성인이 돼서야 뒤늦게 골프를 시작했다. 그것도 처음에 어깨너머로 배웠다. 그럼에도 그는 불굴의 의지로 세계를 제패했다. 그것도 최고 전성기를 달리던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43)를 두번이나 꺾었다.

2009년 PGA챔피언십에서 타이거 우즈를 꺾던 날, 그 벅찬 짜릿함은 지금도 생생하다.

"파이널을 앞두고 연습 그린에서 떨리더라고요. 그래서 속으로 '어차피 (우즈에게) 질 건데 뭐하러 떠냐'고 혼잣말을 했어요. 그러고 나서 첫 티 박스로 걸어가는데 신기하게 하나도 안 떨리더라고요. 경기 내내 연습라운딩 하듯 긴장하지 않고 플레이 했어요."

그랬던 양용은이 8년만의 우승을 앞둔 일본 투어에서는 긴장감을 숨기지 못했다. "그 때보다 더 떨리더라고요.(웃음) 홀을 돌면서 '나도 이렇게 떨리는데 우승 안해 본 다른 경쟁자들은 얼마나 떨릴까' 생각했어요. 실제로 막판에 (경쟁 선수가) 무너지더라고요."

골프인생의 정점을 찍었던 '그 때 그 시절'을 떠올리며 양용은은 과거에서 중요한 교훈을 하나 얻었다. "그 때는 정말 (복잡한 생각 없이) 놀면서 쳤거든요. 그런데 몇 년 우승을 못하다 보니까 더 잘하고 싶고, 뭔가 보여주려는 욕심이 잘 안 버려지더라고요. 욕심이 스스로를 망가뜨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이제는 다시 조금 놀면서 칠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Today - "Q스쿨, 열번은 본 것 같아요."

세월이 많이 흘렀다. 우즈를 꺾고 어퍼컷 세리머니를 날리며 격하게 환호하던 그 시절로부터 어언 10년 세월.

어느덧 마흔 중반을 넘긴 양용은의 화두는 '다운사이징'이다. 버리고 비우기. 마음에 쌓인 집착과, 몸에 쌓인 체중 모두 줄이는 중이다. 그 조차 무리하게 서두르지 않는다. 세월에 흐름에 어울리는 자연스러운 일상의 노력. 그렇게 조금씩 깃털 처럼 가벼워진 골프와 인생을 꿈꾼다.

"투어를 하는데 어느날 발바닥이 아프더라고요. 먹는 양을 조금씩 줄여 한달에 1kg씩 6개월간 6kg을 감량했어요. 지금은 81,82kg 정도로 3년째 잘 유지하고 있어요. 골프에 좋은 운동이라고 무리하게 하지 않아요. 그저 연습하고 코스 돌고 기본적인 웨이트 1시간 이내로 하는 정도죠."

스윙 크기도 줄였다. "간결한 스윙을 위해 백스윙 크기를 약 10cm 정도 조금 낮췄어요. 그렇다고 비거리가 줄지는 않더라고요. (김)형성이나 (강)경남이가 나보다 (비거리가) 짧다고 투덜대던데요?(웃음)"

'왕년의 양용은', 이런 자존심은 없다. 규모가 작아진 현재를 아주 즐겁게, 도전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도전할 수 있다면 그 어떤 무대도 마다하지 않고 밑바닥 부터 도전하는 양용은이다. "지금까지 Q스쿨만 열번은 본 것 같네요. 일본 투어요? 한국에서 오가기도 가깝고 저 같은 40대 선수에게는 딱 좋은거 같아요."

▶Tomorrow - "우승 한번 더 해야죠. 기회되면 PGA도…"

높은 성취를 경험한 사람은 때론 크게 방황하기도 한다. 목표가 없는 상실감이 주는 공허함을 견디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골퍼로서 사실상 모든 것을 이룬 양용은은 과연 어떤 목표로 필드에 설까. "글쎄요. 사실 제가 더 이상 우승하지 못하고 (골프를) 그만둬도 뭐라 할 사람은 없잖아요. 그래도 우승 한번 하고 그만두자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막상 다시 우승을 하니까 올해 한번 더 하고 싶고, 기회되면 미국에도 다시 도전을 해보고 싶어요." PGA 이야기가 나오자 눈빛이 스무살 청년 처럼 빛난다.

당연했던 무대가 세월이 흘러 이제는 도전의 무대가 됐다. 골프 인생 후반기에 다시 한번 그 무대를 밟고 포효하고픈 마음이 이심전심 묻어난다. 멈춰야 할 때도 정해뒀다. "55세 정도까지는 몸 관리 하면서 하고 싶어요. 단 60세까지 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호텔 생활도 지겹고…(웃음)"

양용은도 일과 삶을 조화를 뜻하는 '워라밸'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아내 김미진씨가 캐디를 맡아 투어 생활을 함께 하고 있다. 절친한 형님인 가수 이승철과의 꾸준한 교류도 늘 위안이 된다. "앞으로 계속 와이프가 캐디를 할 겁니다. 이제는 저한테 골프로 잔소리를 할 정도에요(웃음). 승철이 형이요? 한국와서 통화했는데 저 우승했다고 감격해서 울던데요?"

현재는 과거가 되고 미래는 현재가 되면서 시간은 끊임없이 흐른다. 지나간 현재와 다가올 현재 속에 오늘의 양용은이 서있다. 삶과 골프를 조화롭게 영위하는 그의 옆에 이미 환한 미래가 성큼 다가와 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