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세터' 권영민(38)이 16년간 정든 코트를 떠난다.
권영민이 현역 은퇴를 결정했다. 권영민은 10일 스포츠조선과의 전화통화에서 "선수단 휴가를 나오던 지난달 30일 김철수 한국전력 감독님과 면담 때 '은퇴하겠다'고 말씀드렸다"며 "이젠 후배들을 위해 그만 내려놓을 때가 된 것 같다"며 속내를 밝혔다.
이어 "은퇴는 2~3년 전부터 염두에 두다 지난 2017년 KB손해보험에서 한국전력으로 옮길 때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이미지가 다소 좋지 않아서 그렇지 선수로서는 해볼 것 다 해봤다. 후회는 없다"고 덧붙였다.
김철수 한국전력 감독도 권영민의 은퇴를 만류할 수 없었다. 김 감독은 "영민이와 면담 때 지금 판단하지 말고 계약기간인 6월까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선수가 더 하고 싶다고 하면 말릴 수는 없다. 그러나 은퇴로 마음을 굳힌 모습이더라"고 설명했다. 또 "지도자를 하길 원하더라. 영민이가 지도자로 다시 출발할 수 있는 곳이 보이면 언제든지 보내줄 생각"이라고 전했다.
인하대 출신인 권영민은 지난 2002년 현대캐피탈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했다. 2003년 곧바로 주전을 꿰찬 그는 당시 삼성화재를 이끌던 최태웅(현 현대캐피탈 감독)과 함께 한국 남자배구의 세터계를 이끌 쌍벽으로 각광받으며 전성기를 달렸다. 2005년 프로 태동 이후 2005~2006시즌, 2006~2007시즌 현대캐피탈의 V리그 우승을 이끈 권영민은 1m90의 장신이면서도 정확성은 물론 국내 세터로는 드물게 빠른 스피드가 가미된 토스를 구사해 팬의 눈을 사로잡았다.
권영민은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현대캐피탈 시절이었다. 개인적으로 전성기였고 팀도 우승했다. 지는 것보다 이기는 순간들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훈련과정에서 김호철 감독님께 많이 혼나고 배운 것이 눈에 선하다. 또 2009~2010시즌 삼성화재와 챔피언결정전 7차전까지 가서 치열하게 싸우다 아쉽게 세트스코어 2대3으로 패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또 "현역 시절 가장 호흡이 잘 맞았던 공격수는 후인정 장영기 박철우 이선규 윤봉우 등 모두 현대캐피탈 소속 선수들이었다.
시련도 있었다. 지난 2008년부터 슬럼프에 빠졌다. 두 시즌 연속 삼성화재에 우승컵을 내준 뒤 찾아온 자신감 상실이 가장 큰 문제였다. 당시 김호철 전 현대캐피탈 감독은 국가대표 세터 출신 김경훈 코치를 영입해 '기 살리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2010년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왔다. 최태웅이 현대캐피탈로 이적하면서 주전 경쟁이 치열해졌다. 하나의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공존할 수 없었다. 루머가 나돌기 시작했다. 트레이드설에 휘말렸다. 권영민은 불쾌했다. 이 때 느낀 것이 많았다. 그 동안 최태웅의 벽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것이 다소 씁쓸했다. 반대로 '더 열심히 해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좋은 계기가 되기도 했다.
'고참'이 되자 '솔선수범'했다. '맏형'이라고 해서 권위를 내세우지 않았다. 선배들 어깨 너머로 배운 것들을 자신이 고참이 되자 실천했다.
그렇게 꿋꿋이 버틴 결과, 지난 1월 31일 금자탑을 쌓았다. V리그 남녀부 최초로 1만3000세트를 달성했다. 권영민은 "남자부 최초라 기분이 좋았다"며 웃었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권영민은 현대캐피탈-KB손보-한국전력에서 만난 수많은 사령탑의 장점만 빼내 지도자 인생에 장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배운 게 배구다. 김호철 감독님께 배웠고 김 감독 같은 지도자가 되고 싶다"면서 "최태웅 감독은 세계배구 트렌드를 가장 잘 적용하신다. 본받을 점이 있다. 특히 다양한 감독님과 생활해봤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에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