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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만평] 한 달 남은 WHO 게임 질병 분류, '게임 오래 하면 정신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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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이하 WHO)가 '게임 과몰입'을 '게임 장애(Gaming disorder)'라는 질병으로 분류하면서 전 세계 게임 업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WHO는 지난 2015년 인터넷에 공개한 'ICD(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이하 ICD-11)' 초안(http://icd.who.int/)에 '게임 장애'를 포함해 '게임 과몰입'을 공식 질병으로 인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게임 장애'는 'ICD-11' 초안 6번째 항목인 '정신적, 행동적 또는 신경 장애(Mental, behavioural or neurodevelopmental disorders)'에서 '물질 사용 또는 중독성 행동으로 인한 장애(Disorders due to substance use or addictive behaviours)' 하위 항목인 '중독성 행동으로 인한 장애(Disorders due to addictive behaviours)'로 분류됐다.

해당 항목에 따르면 '게임 장애'는 게임을 지속적, 반복적으로 플레이하면서 발생한다. 게임이 일상생활이나 직장생활 등 삶에 관련된 다른 활동보다 우선순위가 높아진 경우와 게임 플레이 시간, 횟수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 경우를 말한다. 하지만 '게임 과몰입'에 대한 명확한 진단 기준이 없어 학계에서는 여러 의견이 오가고 있다.

WHO 정신 건강 및 약물 남용 책임자 블라디미르 포즈냑(Vladimir Poznyak) 박사는 "사람들은 술을 마셔도 대부분 장애를 갖지 않는다"며 "이처럼 게임도 즐기는 사람도 대부분 장애를 갖고 있지 않지만, 특정 상황에서 게임을 남용하면서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게임연구회(International Gaming Research Unit) 이사 겸 노팅엄 트렌트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마크 그리피스(Mark Griffiths) 박사는 "술, 담배, 마약 등은 중독에 따른 금단 현상이 명확하지만, 게임에 대한 금단 증상은 현재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아 좀 더 다양한 시각으로 '게임 과몰입'을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며 "게임을 플레이한 시간보다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발생한 부정적인 영향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게임 장애' 질병 분류 반대하는 게임 업계



'ICD'는 WHO에서 발표하는 사람에게 발생하는 질병 및 사망 원인에 관한 국제 표준 분류 규정이다. 최신판인 'ICD-10'은 1983년부터 1992년까지 개발돼 사용되고 있다. 오는 5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세계보건총회(World Health Assembly, WHA)로부터 'ICD-11'이 승인될 예정이다.

우리나라는 'ICD'를 기반으로 통계청이 주도해서 'KCD(Korean Standard Classification of Diseases,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를 만든다. 현재는 2015년 발표된 'KCD-7'을 사용하고 있다.

KDC는 5년에 한 번 개정되는데, 개정 준비에만 2년 이상이 소요된다. 이 때문에 올해 'ICD-11'에 '게임 장애'가 등재된다 하더라도 2020년 발표될 'KCD-8'에는 등재될 가능성이 작다. 다만 ICD에서 질병으로 분류된 항목이 KCD에 등재되지 않은 사례는 한 번도 없어 2025년 개정될 'KCD-9'에는 '게임 장애'가 등재되리라 예상된다.

이에 따라 국내 게임 업계는 'ICD-11'에 '게임 장애'가 등재되는 데 반대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지난 4월 5일 전국 40개 대학 게임 관련 학과 대표가 참여한 가운데 전국게임관련학과협의회가 발족했다. 같은 날 한국게임학회는 전국게임관련학과협의회와 함께 '게임 장애' 질병 분류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서에서 학회/협의회는 '게임 과몰입' 질병 분류를 강력히 반대하고, '위험한(Hazardous)', '중독(addictive behaviours)', '장애(disorder)' 등 부정적 인식을 주는 용어를 사용하는 점에 우려를 표했다. 정신의학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정신 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 5판(The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for Mental Disorders Fifth Edition, DSM-5)'에서도 '게임 과몰입'을 '근거가 필요한 항목'으로 싣고 있는 부분을 예로 들며 '게임 과몰입'에 대한 정의, 원인, 증상에 대한 사회적, 의학적 기준이 없는 점도 지적했다.

한국게임학회 위정현 학회장은 "'ICD-11' 이 5월 정식으로 도입되면 올해 10월 서울에서 열리는 WHO 콘퍼런스를 기점으로 한국에서도 '게임 장애' 질병 분류 움직임이 활발해지리라 본다"며 "이 때문에 중립적인 전문가 집단인 학회가 나서 성명서 발표와 더불어 국회와 협력해 항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 세계 학계에서도 '게임 과몰입' 질병 분류에 반대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지난해 12월 임상심리학 분야 오픈 액세스 학술지 '행동 중독 저널(Journal of Behavioral Addictions)'에서는 학자 20명 이상이 "'게임 과몰입'은 아직 과학적인 입증이 충분하지 않으므로 질병 분류에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냈다. 올해 3월 1일에는 같은 학술지에 게임 분야 연구 전문가 36명이 '게임 과몰입' 질병 분류 반대 의견을 내고 "새로운 질환을 공식화하기 전에 '중독(과몰입)'이라는 개념부터 명확하게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WHO는 오는 5월 '게임 과몰입'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ICD-11'을 승인하려 한다"며 "'게임 과몰입'을 '게임 장애'라는 새로운 질병으로 분류하는 데 대한 명확한 근거가 없는 상황인 만큼, 게임 업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반대하는 의견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라고 말했다.

그림 텐더 / 글 박해수 겜툰기자(gamtoon@gamto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