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전 북한에서 그렇게 해냈는데, 여기서 무너질 순 없죠."
윤덕여호 오른쪽 풀백 장슬기(24·인천현대제철)가 3일 요르단 암만 알카라메흐필드에서 펼쳐진 오후 훈련 후 요르단여자아시안컵에 임하는 당찬 각오를 밝혔다. 세트피스 훈련 내내 헤딩으로, 온몸을 던져가며 코너킥을 걷어내는 혼신의 플레이는 인상적이었다.
장슬기는 지난해 4월 7일 북한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2018년 요르단 여자아시안컵 예선 B조 남북전 후반 31분 짜릿한 동점골로 1대1 무승부를 이끌며 조1위 요르단행을 이끈 '바로 그' 선수다. 사실상 결승전이었던 이 경기에서 기어이 승점을 따내며 한국은 3승1무, 골 득실로 개최국 북한을 누르고 '프랑스월드컵 티켓'이 걸린 요르단 여자아시안컵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다.
1994년생 장슬기는 윤덕여호의 대표적인 멀티자원이자 대한민국 여자축구의 황금세대다. 2010년 17세 이하 여자월드컵에서 여민지, 이금민, 이소담, 최유리 등과 함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2015년 20세 이하 월드컵 8강의 주역이기도 하다. 2013년 키프러스컵에서 열아홉의 나이에 A대표팀에 발탁돼 남아공전에서 데뷔전을 치렀고, 2014년 3월 11일 키프러스컵 뉴질랜드전(4대0승)에서 A매치 데뷔골을 터뜨렸다.
눈부신 활약을 이어가던 2015년 지소연의 친정팀인 고베 아이낙에서 첫 프로 유니폼을 입었지만 첫 시련도 함께 겪었다. 낯선 땅에서 충분한 기회를 받지 못했다. 이금민, 이소담, 김혜영 등 절친 동기들이 첫 캐나다월드컵 무대를 밟는 모습을 일본에서 TV로 지켜봤다. "당시 일본 경기를 많이 봤다. 일본은 우승 경험 때문인지 예선 통과하고 올라가는 것을 당연시하더라. 우리는 예선통과까지 매경기가 절실했다. 응원하면서 차이가 느껴서 마음도 아팠다"고 털어놨다.
2016년 WK리그 인천 현대제철,돌아온 그녀는 달라졌다. 시련을 거치며 강해지고 성숙해졌다. 2016년 6월 미얀마와의 2차례 평가전에서 2경기 연속골과 멀티골을 터뜨리며 맹활약했다. "어릴 때부터 늘 잘하는 선수라 질책 받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 말도 안통하는 일본에서 '프로는 다르구나' 배웠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절대 마음 약해지지 말자' '멘탈적으로 강해지자'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뛰었다. 다들 너는 늘 간절해보인다고 한다."
투혼의 장슬기는 명실상부 멀티플레이어다. 중앙, 측면, 공격, 수비를 모두 소화한다. 전천후 선수다. 공격본능을 갖춘 풀백이자, 수비도 잘하는 측면 공격수다. 좌우 사이드백, 좌우 윙어, 최전방까지 모두 소화해낸다.
소속팀에서는 공격수, 대표팀에서는 수비수다. 윤 감독은 현대축구의 핵심인 전문 풀백에 대한 고민속에 다재다능한 장슬기를 믿고 쓴다. 지난해 키프로스컵 이후 체력과 담력, 기술을 두루 갖춘 장슬기를 수비수로 활용해왔다.
장슬기는 어느 포지션에서든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낸다. "예전에는 수비수로 대표팀에 오는 게 스트레스일 때도 있었다. 내 자리를 찾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마음을 내려놓고 어느 자리든 경쟁하자, 어디서든 열심히 하자로 마음을 바꾼 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내게 풀백이라는 자리가 주어졌고 모든 최선을 다할 뿐이다. 지금은 대표팀에 들어오면 공격수라는 생각을 접고 '나는 수비다'라고 마음을 다 잡는다"고 했다. "풀백으로서 공격적인 면은 좋고, 수비적으로도 나름 괜찮다 생각한다"며 웃었다. 8일 새벽 2시 첫경기 호주전, 수비수로서 무실점 각오는 절실하다. "호주전은 정말 실점 안하고 싶다. 대표팀에서는 수비수인 만큼 공격수들이 편안하게 공격하도록 더 열심히 더 잘 받쳐주고 싶다. 수비라인이 빛을 못 발하지만 우리가 좋은 선수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절친 선배 지소연이 '머리 깨질 각오로 뛰겠다'고 했다고 하자 장슬기가 "언니가 깨질 각오면 저는 깨져야죠. 머리 깨져도 뛰어야죠"했다. "프랑스월드컵으로 가는 길이 너무 힘들다. 작년 북한전도 그랬다. 그러나 이 힘든 경험들이 쌓여서 프랑스월드컵 가게 된다면 4년전 캐나다월드컵(16강)보다 더 높이 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했다.
북한전 골은 그녀의 '인생골'이다. 당찬 후배의 인터뷰를 먼발치서 지켜보던 지소연이 "우리중에 평양에서 골 넣은 선수가 누가 있어? 우리가 여기 온 건 다 슬기 덕분!"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장슬기가 "그 골은 스스로도 자부심을 갖고 있는 골이다. 평생 잊지 못할 '인생골'"이라며 매력만점 보조개 미소를 발사했다.
시련을 스스로 뛰어넘어 길을 연 스물넷, 장슬기의 첫 아시안컵, 첫 월드컵 각오는 간절하고 비장했다. "북한에서 그렇게 해냈는데 여기서 무너질 수 없다. 5위까지 월드컵을 가지만, 5위로 가는 것과 좋은 성적으로 가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 꼭 잘해내고 싶다"며 눈을 빛냈다. 암만(요르단)=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