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힌 듯 했던 '손흥민 활용법'이 다시 안갯속으로 빠졌다.
'손샤인' 손흥민(토트넘)은 24일(한국시각)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윈저파크 경기장에서 열린 북아일랜드와의 평가전에서 침묵했다. 후반 30분 염기훈(수원)과 교체될때까지 왼쪽 윙포워드와 최전방으로 자리를 옮기며 부지런히 그라운드를 누볐지만 소득은 없었다. 손흥민의 침묵 속 신태용호는 전반 권창훈(디종)의 선제골을 지키지 못하고 1대2 역전패를 당했다.
지난 해 A대표팀의 가장 큰 고민은 '손흥민 딜레마'였다. 토트넘에서 월드클래스급 기량을 과시하던 손흥민은 A대표팀 유니폼만 입으면 작아졌다. 신태용 감독은 '손흥민 활용법' 찾기에 많은 공을 들였다. 지난해 11월 평가전에서 그 힌트를 찾았다. 기존의 윙포워드에서 최전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4-4-2의 투톱에 자리한 손흥민은 한층 위력적인 모습을 보였다. 신 감독은 손흥민이 골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기동력과 돌파력이 좋은 이근호(강원)를 파트너로 기용했다. 손흥민은 콜롬비아전에서 두 골을 폭발시키며 모처럼 이름값을 했다. 13개월만의 A매치 골이었다.
4개월만에 유럽파가 가세하며 완전체를 구성한 신태용호의 시선은 역시 손흥민을 향했다. 손흥민은 3월 잉글랜드 무대 5경기에서 무려 7골을 폭발시키며 고공행진을 펼쳤다. 신 감독이 "타이밍이 몸이 최고조로 올라와 있다가 월드컵 때 컨디션이 다운될까봐 걱정이 앞선다"고 할 정도로 최상의 컨디션을 과시했다. 신 감독은 유럽 원정을 떠나는 길에 "손흥민을 측면으로 뺄 수 있다. 한 포지션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라며 달라질 '손흥민 활용법'에 힌트를 줬다. F조에서 함께 상대할 팀들에게 혼동을 주기 위한 의도도 있었다.
신 감독은 북아일랜드전에서 4-3-3 카드를 꺼냈다. 손흥민이 왼쪽에 자리했고, 김신욱(전북)과 권창훈이 파트너로 나섰다. 고정된 전술은 아니었다. 키는 손흥민이 쥐고 있었다. 신태용호는 손흥민의 위치를 중심으로 4-3-3과 4-4-2를 오갔다. 손흥민은 왼쪽을 중심으로 가운데, 오른쪽을 오가는 '프리롤' 임무를 부여받았다. 가운데로 옮기면 김신욱과 투톱을 이뤘고, 위치에 구애받지 않고 공격 전지역을 누볐다.
그런데 이 역할이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손흥민은 허리진영까지 내려와 빌드업에 관여했다. 대부분의 공격작업이 손흥민을 거쳤다. 이러다보니 정작 골을 넣을 수 있는 위치에 없었다. 물론 상대의 집중 견제도 있었지만, 전술적인 아쉬움도 컸다. 지난 콜롬비아, 세르비아와의 11월 평가전 당시 손흥민의 역할은 '골잡이'였다. 그가 골을 넣을 수 있는데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이날 북아일랜드전에서는 손흥민이 골을 만드는데 더 초점을 둔 모습이었다. 손흥민과 마찬가지로 절정의 기량을 뽐내고 있는 김신욱을 함께 활용하겠다는 전술의 취지는 이해가 갔지만, 손흥민의 결정력을 살릴 수 있는 동선은 만들지 못했다.
이날 '캡틴' 기성용(스완지시티)을 중심으로 박주호(울산) 이재성(전북) 등이 허리진영에서 좋은 호흡을 이어가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굳이 손흥민까지 빌드업에 가세시킬 필요가 있었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평가전을 통해 확인한 것은 손흥민의 득점력을 살려주기 위해서는 4-4-2의 투톱이, 파트너는 이근호 유형의 공격수가 잘 어울린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근호와 비슷하지만, 파괴력과 득점력이 더 좋은 황희찬(잘츠부르크)을 윙포워드로 한정시켜 활용한 테스트한 것 역시 아쉬운 대목이다. 손흥민+황희찬 투톱 카드는 아직까지 신태용호에서 한번도 테스트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때로는 단순할 필요가 있다. 이날 손흥민의 침묵은 지나친 자유가 독이 됐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