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루가 아니라 타석에 뿌리더라고요."
한화 이글스 한용덕 감독은 24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2018 KBO리그 정규시즌 개막전을 앞두고 재미있는 일화를 들려줬다. 전날 대전 홈구장에서 한 시즌 동안 무탈하게 좋은 성적을 내게 해달라는 의미에서 지난 고사에 얽힌 에피소드였다. 고사를 마친 선수들은 각자의 수비 위치로 가서 부상 없는 시즌을 기원하며 막걸리를 뿌렸다고 한다. 그런데 김태균은 1루로 가지 않고, 타석에 뿌렸다고 한다. 한 감독은 "1루로 갈 줄 알았는데, 깜짝 놀랐다. 김태균이 올해 1루수가 아닌 지명타자를 원한다는 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한 감독은 대수롭지 않게 언급한 일화였지만, 이 안에는 한화의 또 다른 문제점이 숨어있다. 풀어보면 이렇다. 일단 김태균은 이제 1루 수비에 더 이상 애착이 없다. 데뷔 때부터 지켜온 자리임에도 나이와 몸 상태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이제는 완전히 내려놓았다고 볼 수 있다. 포지션 플레이어가 팀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인의 판단으로 자기 수비 포지션을 내려놓는 건 드문 일이지만, 선수의 선택이니 뭐라고 할 순 없다. 지명타자로서 타격에 집중해 팀에 보탬이 되겠다는 각오도 담긴 듯 하다. 실제로 김태균은 최근 몇 년간 가끔 어처구니없는 1루 수비로 패배의 빌미를 제공한 적도 있다. 그런 점이 부담을 키웠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새로운 문제가 파생된다. 정작 김태균이 빠지면 1루 수비를 전문적으로 맡아줄 선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화는 김태균의 지명타자 전환을 대비해 백업 1루 요원을 키워온 팀이 아니다.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지만, 수비적 측면에서 '포스트 김태균'을 키워내는 데 무심했다. 그래서 전문 1루수가 없다. 과거에는 1루수가 다른 내야 포지션에 비해 쉽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현대 야구에서는 다르다. 좌타자가 크게 늘어났고, 타구 스피드도 갈수록 빨라진데다 작전에 의한 1루쪽 번트 타구도 대폭 증가했다. 그래서 1루도 이제는 '핫코너'로 분류된다. 즉, 전문 수비수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해 말 한화 지휘봉을 잡은 한용덕 감독이 이런 상황을 대비해 백창수를 1루 요원으로 키우고 있지만 당장 해결된 문제는 아니다. 백창수도 LG 트윈스 시절부터 1루와는 거리가 다소 멀었던 터라 적응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 실제로 시범경기를 통해 부족한 점이 많이 노출됐고, 결국 백창수는 개막 엔트리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이게 한 감독의 잘못은 아니다. 지난 수 년간 쌓여온 한화의 고질적 문제 중 하나를 이제야 만났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문제점이 24일 넥센전에서 폭발했다. 한 감독은 1루 수비를 꺼려하는 김태균 대신 송광민을 1루수로 투입했다. 그리고 오선진에게 3루를 맡겼다. 두 명 모두 수비 센스가 뛰어난 선수지만, 늘 맡았던 포지션이 아니라 긴박한 순간에 대처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실제로 승부의 분수령이 된 4회말에 그런 상황이 나왔다.
넥센이 3-2로 역전한 2사 만루 상황. 고전하던 한화 선발 키버스 샘슨은 대량 실점 위기에서 박병호에게 간신히 3루 땅볼을 유도해냈다. 추가 실점없이 이닝이 종료될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실책이 나왔다. 3루수 오선진의 악송구를 간신히 잡은 1루수 송광민이 박병호를 태그하려다 실패한 것. 미트가 몸에 닿지 않는 바람에 1점을 또 헌납했다.
오선진의 송구 선택과 방향, 그리고 송광민의 잘못된 태그 시도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결과다. 모두 전문 분야가 아니어서 벌어진 문제다. 오선진이 풍부한 3루 수비 경험을 지녔다면 먼 1루 송구 대신 더 확률이 높은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 또 송광민도 그냥 1루 베이스를 밟은 채 송구를 잡았다면 더 쉽게 아웃을 잡아낼 수 있었다. 모두 자기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했다. 김태균이 1루를 떠나면서 벌어진 현상인데, 금세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