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난 놈'이다." 신태용 한국 축구 A대표팀 감독(48)은 지난 2010년 프로팀(성남 일화) 지휘봉을 잡은 지 단 2년 만에 아시아 정상에 섰을 때 이렇게 외쳤다.
그의 지도자 인생은 '난 놈'이라고 스스로 지은 별명 못지 않게 화려했다. 2008년 프로 사령탑 데뷔시즌이던 2009년 K리그와 FA컵에서 동시에 준우승을 차지했다. 2010년에는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우승을 일궜고 2011년 FA컵 챔피언에 올랐다.
그는 명실상부한 '토너먼트의 강자'였다. 특이한 이력이다. FA컵, ACL, 20세 이하(U-20) 월드컵, 2016년 리우올림픽 등 자신이 감독으로 이끈 역대 국내외 토너먼트 대회에서 예선탈락한 적이 없다.
스스로 "운이 좋다"라는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성남 시절, 각급 대표팀에서도 기량이 좋은 선수들과 함께 했기 때문에 당연히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운장설'이 있다. 이에 대해 신 감독은 당당했다. "'신태용은 운이 좋은 놈'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운도 준비된 자만이 가질 수 있다. 아무리 내가 운이 좋다고 하지만 준비하지 않고 하늘에서 감 떨어지듯 기다리기만 하는 요행만 바라서는 안된다. 철저하게 준비하면 운도, 좋은 결과도 따를 것이다."
'난 놈'의 '운'이 86일(3월 20일 기준) 앞으로 다가온 2018년 러시아월드컵 본선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스포츠조선은 최근 경기도 성남 분당에서 가진 신 감독과의 창간 28주년 인터뷰에서 지난 8개월간 A대표팀을 이끈 소회와 월드컵 본선에서의 자신감을 들을 수 있었다.
▶다사다난했던 8개월 "서운했다"
지난해 7월 4일, 신 감독은 한국 축구의 소방수로 투입됐다.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빨간불을 켠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경질된 뒤 A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사실 신 감독에게는 협회의 제안이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180분 뿐이었다. 남은 두 경기에서 변화를 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 그렇다고 A대표팀 감독이 된 이상 변명은 있을 수 없었다. 월드컵 진출 좌절은 자신의 지도자 인생을 회생시키기 어렵게 만들 수 있는 큰 부담이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어려운 미션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팬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심지어 '히딩크 모시기'란 엉뚱한 이슈 속에 '월드컵 9회 연속 본선 진출'에 대한 성과가 묻혀버렸다. 신 감독은 "(지난 8개월간) 롤러코스터를 탔다. 사실 A대표팀 감독을 맡지 않아도 됐다. 내 축구인생이 끝날 수도 있었다. 그래도 도전을 했고 월드컵에 진출했다. 스스로 '잘했다. 고생했다'는 위안을 삼고 있었는데 이상한 소문에 휩싸였을 때 서운하기도 했다. '이렇게 욕을 얻어먹으면서 해야 하나'라는 자괴감도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나는 할 수 있다"X2, "우리는 할 수 있다"
신 감독은 10년 전 성남을 이끌던 시절부터 선수들에게 강조했던 구호가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할 수 있다." 신 감독은 이 구호를 자신에게 적용시키면서 다사다난했던 8개월을 버텼다. 그는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믿고 선수들이 뭉치면 어느 팀도 두렵지 않다. 나무 젓가락 한 개를 세우기는 힘들지만 다발은 세우기 쉽듯이 말이다. 심적으로 힘든 시기에도 '나는 한국을 월드컵에 진출시킨 감독'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지냈다"고 말했다.
'히딩크 광풍'이 지나가자 이번에는 경기력 논란의 화살이 신 감독에게 날아들었다. 지난해 10월 유럽 평가전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러시아에 2대4로 졌고, 모로코에 1대3으로 패했다. 신 감독은 "지난해 10월 유럽 평가전은 반쪽 전력이었다. 그래서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러시아에 네 골 먹었지만 경기내용은 좋았다. 반면 모로코전은 좋지 않았다. 이후 유럽을 다녀오면서 선수들에게 몇 가지 문제점을 알려줬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A매치 때 선수들이 의외로 빨리 받아들여줬다. 콜롬비아(2대1)와 세르비아전(1대1) 때는 경기내용과 결과를 잡았다. 동아시안컵 때도 중국전(2대2)과 북한전(1대0) 경기 내용이 좋지 않다고 얘기하지만 시즌이 끝난 국내 선수들이 경기를 잘해줬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신태용호는 당시 일본전을 4대1 승리,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이젠 정보싸움, 쫄지 않는 '난 놈'
러시아월드컵이 3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실험을 마친 신 감독은 월드컵 본선 엔트리(23명)의 80~90%를 확정지었다. 신 감독은 "담담하다. 스타일상 미리 걱정하는 편은 아니다. 월드컵이 다가온다고 해서 긴장하지 않는다. 북아일랜드전(3월 24일)과 폴란드전(3월 28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웃었다.
로드맵대로 잘 걸어가고 있다. 신 감독은 "꾸준하게 잘 만들어지고 있다. 전혀 부족함과 불편함이 없다. 전력분석도 잘 움직여준다. 가르시아 에르난데스 전력분석관이 3월 유럽 평가전부터 합류하기로 했다.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에서 선수 생활을 5년간 한 분이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분석관도 했었다. 토니 그란데 코치와도 잘 안다. 토니와 비슷한 연배라 컴퓨터를 잘 다루지는 못하지만 전력분석에선 대가로 통한다. 그래서 컴퓨터를 다룰 사람은 따로 둘 것"이라고 했다.
▶시뮬레이션과 스웨덴전 필승
신 감독은 5월 월드컵 본선 최종 엔트리를 발표할 예정이다. 지금 계획 대로라면 3월 유럽 평가전 명단에서 큰 변화를 주지 않을 전망이다. 그만의 선수 발탁 기준은 확실했다. 신 감독은 "물음표는 컨디션 저하나 부상이 없으면 어느 정도 내 머리 안에는 구성이 돼 있다. 크게 건드리지 않으려고 한다"며 "생각 외로 합류해서 뭔가 보여주는 시너지를 생각하고 있다. 몇몇 선수가 바뀔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K리그와 아시아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축구를 잘 하는 31팀을 상대한다. 경쟁력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K리그에서 경기를 못하더라도 저 팀과 경쟁력이 있으면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우리는 벌써부터 스웨덴전 시뮬레이션을 몇 번이나 돌려보고 있다.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하듯이 선수 기용과 포메이션을 수도 없이 돌려보고 가장 강한 라인업을 꾸린다. 감독이란 자리가 그렇게 쉽지 않다"며 혀를 내둘렀다.
6월 18일, 신태용호는 러시아월드컵 본선 첫 상대 스웨덴과 충돌한다. 첫 단추를 잘 꿰야 원정 16강이 보인다. 신 감독은 "첫 경기 결과가 좋으면 두 번째 멕시코전(6월 24일)도 잘 될 것이다. 첫 경기를 잡으면 예선 통과는 가능하다. 세번째 상대 독일(6월 24일)에 대한 전력분석은 많이 안 하고 있다. 현장에서 1~2차전을 보기 때문이다. 그 때가서 보는 것이 낫다. 요하임 뢰브 감독은 워낙 선수층이 두터워 여러 선수들을 기용하기 때문에 지금은 혼란스럽다"고 했다. 한국은 이번 러시아월드컵 본선서 스웨덴 멕시코 독일과 F조에 속해 있다.
▶인성 성장한 손흥민 너무 잘나가서 불안?
2014년 브라질월드컵을 기점으로 A대표팀 주축은 손흥민(26·토트넘)이 됐다. 소속팀에서의 활약은 월드클래스급이다. 지난 시즌 47경기에서 21골을 터뜨렸다. 올 시즌도 44경기에서 18골을 기록 중이다. 최근에는 4경기에서 7골을 폭발시키기도 했다. 신 감독은 "너무 잘나가서 불안하다"면서 농을 던진 뒤 "중요한 역할이다. 지난해 최종예선 때보다 훨씬 넓어졌다. 특히 인성이 달라졌다. 대표팀 내에서도 그렇다.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9~10차전 끝나고 그 다음 10월 콜롬비아전과 세르비아전 때 변해서 왔다. 선배 기성용과 방을 같이 쓰더라. 깜짝 놀랐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도 손흥민을 인정하더라"고 전했다. 성남=노주환, 김진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