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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축구특별시, "해체하라" 구호까지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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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대전월드컵경기장.

K리그2(2부리그) 대전시티즌의 모습은 희뿌연 날씨와 동색이었다. 서포터스가 등을 돌린 선수단은 공허한 메아리 속에 그라운드를 뛰었고 고종수 대전 감독은 말없이 그라운드만 바라볼 뿐이었다. 경기장 한켠에서는 '도망치듯 떠나 영웅인 척 하지마', '서포터 버릇을 고치겠단 당신은 대체', '이런 구단을 응원할 수 없다'는 걸개가 나부꼈다. 경기장 1, 2층을 오간 문구는 이날 지역TV 화면을 타고 안방으로 송출됐다. '축구특별시'로 불렸던 대전의 오늘이다.

경기 하루 전날에도 논란이 있었다. 이날 펼쳐진 서울 이랜드와의 2018년 KEB하나은행 K리그2 3라운드를 앞두고 외국인 선수 가도에프를 영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또다시 팬심이 들끓었다. 구단 SNS를 통해 발표가 나가자마자 곱지 않은 댓글이 이어졌다. 일부 팬들은 57명에 달하는 선수단 규모를 한때 인기를 끌었던 아이돌 발굴 프로젝트에 빗대기도 했다. '픽 미(Pick Me)' 노래 가사를 인용하는 글도 있었다. 구단 측은 결국 몇 시간 뒤 해당 게시물을 지웠다. 김 호 대전 대표이사와 고 감독을 향한 비난의 눈초리는 구단 행정 전체를 향한 불신으로 표출되고 있다. 경기 전 만난 구단 관계자는 "(구단 SNS에 게시하기가) 겁이 난다"고 말했다.

김 호 대전 대표이사는 할 말이 많아보였다. "구단이 과도기를 겪을 때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고 운을 뗀 그는 "경영을 하는 입장에서 모든 이들의 목소리에 일일이 답하기 곤란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법적으로 책임을 질 수 있는 (대전시티즌 정상화추진위원회) 대표자에게 만남을 청했는데 나오지 않더라"고 말했다. 논란이 된 선수단 구성을 두고도 "다이아몬드를 그냥 놔둬봤자 돌멩이에 불과하다. 우수한 선수를 일찍 데려와 키운 뒤 이적시키면서 수익을 내겠다는 뜻인데 '규모'에만 초점을 맞추는게 안타깝다"며 "일각에선 이들의 문제를 두고 '혈세', '세금' 이야기를 하는데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김 대표이사는 "지난 안산전에서 내가 경기 도중 라커룸에 내려간 문제를 두고 '감독에게 직접 지시를 했다'는 이야기가 있더라. 당시 상대팀에서 2명이 퇴장을 당했다. 경험상 우리에게도 문제가 생길 것 같다는 생각에 '차분하게 하라'는 말을 건넨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부 에이전트와의 유착관계 거론, 언론의 시각, 일부 팬들의 비난 걸개 문구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팬심은 여전히 평행선이었다. 경기 시작 휘슬과 동시에 '김호시티즌X 대전시티즌', '57명 월급=세금', '시티즌은 누구겁니까?'라는 걸개가 걸렸다. 안전요원들의 제지 속에 10여분 만에 걸개가 철거됐으나 일부 팬들은 1, 2층 관중석을 돌며 걸개와 구호를 외쳤다. 2군팀 감독의 아들로 알려진 선수의 이름을 거론하며 "나가라!"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후반전이 시작될 즈음에는 일부 서포터스를 중심으로 "해체하라"는 구호가 나오기도 했다. '응원'을 호소하는 장내 아나운서의 구호가 메아리 칠 뿐이었다.

이날 경기에서 대전은 후반 32분 터진 페드로의 페널티킥 결승골에 힘입어 2명이 퇴장 당한 이랜드를 1대0으로 제압하며 시즌 첫 승을 따냈다. 하지만 그라운드엔 승리의 기쁨이 아닌 무너진 신뢰만 존재할 뿐이었다.

한편, 부산은 같은날 부산구덕운동장에서 가진 아산과의 K리그2 3라운드에서 1대0으로 이기며 시즌 첫 승을 낚았다.

대전=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