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을 따고도 너무 덤덤하더라고요."
지난해 1월, '철인' 신의현(38·창성건설)이 우크라이나 리비브 장애인노르딕스키 월드컵에서 사상 첫 금메달과 함께 2관왕에 오른 직후 배동현 대한민국 선수단장이 털어놓은 에피소드다. 평창패럴림픽에서 대한민국 선수단을 이끄는 배 단장은 신의현 소속팀인 창성건설 대표이사다. 2015년 8월 대한민국 최초의 장애인노르딕스키 실업팀을 창단하고 지난 3년간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팀 창단과 함께 노르딕스키를 시작한 신의현의 금메달 기적. 누구보다 기쁜 것은 당연했다. 배 단장은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축하전화를 걸었다. "'정말 대단한 일을 해냈다. 축하한다' 했더니, (신)의현 선수가 수화기 너머로 무덤덤하게 '그러게요. 어떻게… 그렇게 됐네요' 하더라. 선수가 워낙 담담하다보니 나도 눈물이 쏙 들어가더라"며 웃었다.
배 단장의 증언대로, '장애인 노르딕스키 철인' 신의현은 남자 중에 '상남자'다. 웬만한 일엔 뛸 듯이 기뻐하는 법도 없다. 웬만해선 죽을 듯이 힘들다는 엄살도 없다. 매사 그저 덤덤하다. 인터뷰 답변은 길지 않지만, 언제나 솔직하고 당당하다.
전도양양한 청춘은 대학 졸업을 하루 앞둔 2006년 2월, 스물여섯에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다. 생사의 갈림길, 남다른 모정으로 기어이 자신을 살려놓은 어머니 이회갑씨(68)를 향해 '죽게 놔두지 나를 왜 살렸냐'며 원망한 적도 있었다. 그때 어머니 가슴에 대못을 박은 일은 지금도 가장 후회되는 일이다. 평창에서 금메달을 따고 싶은 가장 큰 이유 역시 어머니다. 강인한 정신력과 끈질긴 체력을 물려준 어머니에게 못 다한 효도를 꼭 하고 싶다.
차마 가늠할 수 없는 깊이의 시련을 훌쩍 뛰어넘은 그는 거침없이 대범하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엔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딨어요" 한다. 크로스컨트리 좌식스키에 절대적인 허리힘의 원천을 묻는 질문엔 "공주에서 어릴 때 부모님을 도와 밤 농사를 한 덕분"이란다. 시원한 성격, 화통한 언변은 저돌적인 레이스 스타일, 못말리는 승부욕과도 닮아 있다. "늘 내 앞에 한 사람만 제치면 된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나선다. 내 앞의 선수를 하나씩 제칠 때 정말 짜릿하다."
1992년 알베르빌 대회 첫 출전 이후 2014년 소치대회까지 7번의 패럴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은 금메달을 딴 적이 없다. 2002년 솔트레이크 대회 알파인 스키 한상민의 은메달, 2010년 밴쿠버 대회 휠체어컬링 은메달 등 은메달 2개가 전부다. 9일 평창패럴림픽 개막식 이튿날인 10일 바이애슬론 7.5㎞ 남자좌식에 출전하는 신의현에게 사상 첫 금메달의 역사를 기대하고 있다. 신의현은 평창패럴림픽 모의고사였던 지난달 핀란드 부오카티 세계장애인노르딕스키 월드컵에서도 이 종목에서 26분08초01의 압도적인 기록으로 우승했다.
평창패럴림픽, 금메달 경쟁자인 러시아 톱랭커 선수들이 도핑 징계로 인해 출전하지 않는다. 금메달 가능성이 더 높아진 것 아니냐는 질문에 '상남자' 신의현은 이렇게 답했다. "나는 그 선수들도 나왔으면 했다. 두렵지 않다. 우리 안방에서 제대로 맞붙어 이겨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한편으론 아쉽다."
금메달 기대주로서 부담이 크지 않을까. 신의현은 "부담도 있지만 이 자체를 즐기고 있다. 주변에서 금메달 후보로 꼽고 있던데, 개인적으로 크로스컨트리, 바이애슬론에서 각각 1개씩 금메달을 따는 게 목표"라고 패기만만하게 답했다.
평창패럴림픽은 9일 오후 8시 개회식을 시작으로 열흘간의 열전에 돌입한다. 49개국, 570명의 사상 최대 규모 선수들이 6개 종목(알파인스키, 스노보드, 바이애슬론, 크로스컨트리스키, 아이스하키, 휠체어컬링)에서 80개의 금메달을 놓고 지난 4년간 갈고 닦은 기량을 겨룬다. 북한도 동계패럴림픽 사상 처음으로 선수 2명을 파견했다. 노르딕스키의 마유철, 김정현이 국제패럴림픽위원회(IOC)로부터 와일드카드(특별출전권)를 받아 개회식 남북 공동입장이 사상 최초로 성사됐다. 대한민국 선수단은 6개 전종목에 걸쳐 역대 최다 선수 36명, 임원 47명 등 83명의 선수단을 구성했다. 동계패럴림픽 사상 첫 금메달을 포함,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 종합 10위를 목표 삼고 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