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백지은 기자] 사과만 하면 모든 게 끝나는 걸까.
배우 조재현과 최일화가 성추행 혐의를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다. 조재현은 24일 공식 입장문을 통해 "반성보다 치졸한 생각으로 시간을 보냈다. 과거의 무지몽매한 생각과 오만하고 추악한 행위들과 일시적으로나마 이를 회피하려던 내 자신이 괴물 같고 혐오감이 들었다. 고백하겠다. 잘못 살았다. 30년 가까이 연기 생활을 하며 동료 스태프 후배들에게 실수와 죄스러운 말과 행동을 많이 했다. 큰 상처 입은 피해자분들께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 모든 걸 내려놓겠다. 정말 부끄럽고 죄송하다"고 밝혔다. 최일화는 한 매체를 통해 "사태가 터졌을 때 바로 사과를 전하고 싶었지만 겁이 났던 게 사실이다. 늦었지만 당사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며 자숙의 시간을 갖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렇게 두 배우는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를 전했다. 성추행 의혹을 부인한 오달수와 곽도원은 논외로 하더라도 비겁한 변명으로 일관한 누군가보다는 훨씬 양심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이대로 사과만 하고 끝날 문제인지는 좀더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드라마는 이들의 사건으로 치명타를 입었다. 조재현은 tvN '크로스'에 출연중이었고, 최일화는 MBC 새 수목극 '손 꼭 잡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자'에 출연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성추행 사건으로 두 배우는 모두 드라마에서 하차하게 됐다.
'크로스'의 경우엔 조재현의 캐릭터 자체가 시한부 삶을 사는 설정이었기 때문에 후속 배우를 섭외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캐릭터의 죽음이 극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전개로 극을 끌어왔던 만큼, 조재현을 당장 극에서 삭제시킬 수가 없는 상황이다. 결국 제작진은 조재현의 마무리 촬영을 남겨놓게 됐고, '성추행범을 더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시청자의 원성을 끝까지 받아내야 하는 리스크마저 떠안게 됐다. '크로스' 측은 "조재현을 최대한 빨리 하차시키기 위해 논의 중이다. 일단 오늘(26일)과 내일(27일) 방송되는 9,10회에서는 스토리에 지장이 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재현의 분량을 최대한 편집할 계획이다. 내부적으로 12회차 하차를 논의 중이긴 하나 결정된 사안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손 꼭 잡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자'의 상황도 썩 좋지 않다. MBC는 26일 "최일화의 배역을 다른 배우로 교체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아직 방영 전인 작품인 만큼, 문제가 되는 배우를 교체하겠다는 과감한 선택이었으나 '손 꼭 잡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자'는 후속 배우를 찾아야 한다는 부담감과 최일화의 촬영분을 재촬영 해야 한다는 시간적 물적 손해를 떠안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은 조민기의 성추행 의혹으로 홍역을 치른 OCN '작은 신의 아이들'도 직면했던 문제다. '작은 신의 아이들'은 제작발표회까지 앞둔 상황에서 조민기가 성추행 의혹으로 하차를 결정하면서 드라마를 홍보해야할 중요한 행사를 해명의 시간으로 바쳐야 했다. 또 조민기의 후임 배우로 이재용을 발탁, 재촬영하는 수고도 감내해야 했다.
이처럼 배우들은 '책임을 지겠다'는 명분 하에 하차를 결정했지만, 남겨진 드라마로서는 제작비 인건비 촬영스케줄 재조정 등 시간적 물적 손해가 막심할 뿐더러 배우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드라마의 이미지가 크게 실추되는 2차 피해를 맞게된 것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손해배상을 청구하거나 할도 없는 노릇이라 관계자들의 한숨은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피해자에게도 2차 피해가 더해진다는 것이다. 기껏 용기를 낸 피해자들의 증언이 가십성 멘트로 취급되고, 피해자의 신분이 노출되는 등의 2차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는 이미 씻지 못할 상처를 입은 이들에게 소금을 뿌리는 꼴이다.
가해자로서 진정한 사과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자숙의 시간을 갖는 차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자신으로 인해 생긴 모든 2차 피해까지 책임지는 자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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