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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Live]'축복받지 못한 늦깎이' 김보름, 벼랑 끝에서 '메달꽃'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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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벼랑 끝에서 밝은 '메달꽃'이 폈다. 씨앗은 김보름(25·강원도청)의 땀방울이었다.

김보름은 24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매스스타트 결선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은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매스스타트는 3명 이상의 선수가 동시에 출발해 레인 구분 없이 질주하는 경기다. 전체적인 경기 룰은 스피드스케이팅과 같지만, 레인 구분 없이 서로 견제하며 달리는 측면에선 쇼트트랙과도 유사한 종목이다. 남녀 모두 400m 트랙을 16바퀴 돈다. 특별한 점이 있다. 점수제다. 4, 8, 12바퀴 1~3위에 각각 5, 3, 1점이 주어진다. 마지막 바퀴 1~3위에겐 60, 40, 20점이 부여된다. 변수가 많다.

매스스타트. 생소한 종목이다. 2014년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공식 승인을 받아 스피드스케이팅 종목으로 첫 도입됐다. 그리고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첫 선을 보인 종목이다. 김보름은 평창올림픽 매스스타트에서 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빙속의 새 역사를 썼다. 첫 올림픽 매스스타트 메달리스트가 됐다.

김보름은 '축복받지 못한 자'였다. 여자 팀추월 '팀워크 논란' 때문이다. 지난 19일 열린 여자 팀추월 준준결선 레이스. 김보름 박지우(20·한국체대) 노선영(29·콜핑)이 나섰다. 기대 이하의 경기력. 팀이 따로 놀았다. 노선영만 배제된 듯 보였다. 이후 김보름의 인터뷰 태도 논란, 백철기 감독의 해명, 노선영의 연이은 반박이 이어지며 상황은 더 악화됐다. 명확히 드러난 사실은 없다. 양 측의 주장이 엇갈릴 뿐이다. 끝 모를 의혹과 폭로의 연속. 명확히 밝혀진 건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이지만 김보름은 범죄자에 버금가는 '국민 악녀'가 돼있었다. 김보름의 가족들조차 딸의 올림픽 질주를 보러 경기장에 오는 것을 망설였다. 딸에게 부담이 될까봐. 수 많은 관중들의 날선 반응에 딸이 일방적으로 찢기는 모습을 보게 될까봐. 거센 풍파를 딛고 김보름은 벼랑 끝에서 '메달꽃'을 피워냈다.

'축복받지 못한 자' 김보름. 그는 '늦깎이'이기도 하다. 지금은 '한국 매스스타트 간판'으로 불리는 김보름이지만 그의 시작은 쇼트트랙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시작했다. 또래보다 5~6년 늦은 출발이었다.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빙판을 떠날까 고민도 했다. 김보름은 승부수를 던졌다. 2010년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했다. 그 해 밴쿠버올림픽 남자 1만m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이승훈(30·대한항공)의 모습에서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이승훈 역시 쇼트트랙 주자였다가 2009년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 올림픽 무대 최정상에 올랐다.

탄탄대로가 펼쳐졌다. 2011년 대표팀에 선발, 알마티동계아시안게임 여자 3000m 은메달을 차지했다. 그리고 2014년 매스스타트가 도입되면서 날개를 달았다. 승승장구 하던 김보름은 지난해 2월 강릉 세계선수권 정상에 올랐고, 그해 세계랭킹 1위도 찍었다. '늦깎이'가 집념으로 이뤄낸 성공 드라마였다.

미소도 잠시, 내리막 길이 이어졌다. 평창올림픽을 앞둔 시점. 김보름은 2017~2018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1~4차 월드컵에서 100%의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2차 월드컵 땐 경미한 허리 통증으로 불참하기도 했다. 그리고 '팀워크 논란'에 휩싸였다. 과묵하고 덤덤한 성격의 김보름이지만, 지난 20일 그는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논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노선영은 매스스타트 경기 직전인 23일 훈련 후 "대회가 다 끝난 뒤 모든 것을 말할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흔들림의 시간은 끝을 모른다. 김보름을 향한 관심은 칼날이 됐다. 김보름은 코칭스태프에 매스스타트 불출전 의사까지 비추기도 했다. 하지만 올림픽 도전을 놓고 싶지 않았다. 심리치료를 받아가며 마음을 다잡았다. 김보름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었다. 그 결과는 올림픽 매스스타트 첫 메달이었다.

"김보름! 김보름! 괜찮아! 괜찮아!" 혼신의 레이스 앞에 논란은 없었다. 역주를 펼친 그를 향해 7000여명의 팬들이 이름을 연호했다. 김보름은 경기 후 눈물을 흘렸다. 그간의 마음고생을 날렸다. 태극기를 들고 링크를 돌던 김보름은 관중석 앞에 멈춰서 허리를 숙여 인사하더니, 큰 절을 올렸다. 그간 논란에 대한 사죄의 뜻이었다. 김보름의 평창 마지막은 해피엔딩이었다.

강릉=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