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그뤠잇!]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이 어느 덧 폐막을 앞두고 있습니다. 길고 길었던 대장정이었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뛰었습니다. 많은 선수들이 땀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올림픽이 '지구촌 축제의 장' 같지가 않습니다. 감동 드라마의 연속인 '순수한 스포츠 극장' 같지가 않습니다. '특혜논란' '갑질논란' '진실논란'…. 무슨 '논란의 올림픽' 같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 선수단의 노력과 땀, 눈물이 묻히고 있습니다. '마땅히' 받아야 할 박수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스포츠조선은 남은 기간 '올림픽 정신'에 주력하고자 합니다. '하나된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도전'에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평창 그뤠잇!]은 우리 선수단의 땀과 환희, 눈물이 얼룩진 '진정한 올림픽 이야기'입니다. <스포츠조선 평창올림픽 취재팀>
위의 여섯 장의 사진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전후 사정을 모르는 이들도 눈치를 챌 만하다. 비교하고 싶지 않지만 계속 비교가 된다. 최근 팀워크 상실을 보여준 여자 팀추월대표팀과 반대로 끈끈한 정을 연출한 남녀 쇼트트랙대표팀의 '극과 극'의 모습이다.
'원팀', 한국 남녀 쇼트트랙대표팀의 또 다른 이름이다. 지난 21일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맏언니' 김아랑(23·고양시청)에게 물었다. "이렇게 팀이 단단해진 원동력은 무엇인가." 김아랑은 자신 있게 답했다. "끈끈한 조직력은 엄청난 훈련을 같이하면 생긴다."
이들의 끈끈함은 빙판 위에서 잘 나타났다. 넘어져도 1등을 했고, 넘어지면 안아줬다. 지난 10일이었다. 여자 3000m 계주 예선 당시 캐나다, 헝가리, 러시아와 한 조에 편성된 한국은 대역전 드라마를 연출하며 대한민국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23바퀴를 남겨두고 막내 이유빈(17·서현고)이 중심을 잃고 넘어진 상황에서 한국은 당황하지 않았다. 극한 상황을 시뮬레이션 할 정도로 만반의 대비를 했던 것이 효과를 봤다. 최민정이 엄청난 스피드로 상대와의 간극을 줄인 뒤 엄청난 팀워크로 1위로 피니시라인을 통과했다.
팬들이 박수를 보냈던 건 전략 등 기술적인 부분이 아니었다. 바로 정신적인 부분이었다.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넘어져도 강력한 집중력으로 앞선 팀을 잡아내고 1위를 했다는 것에 감동을 느꼈다.
또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이 흘린 눈물에도 공감했다. 1년여간 올림픽만 바라보며 견뎠던 시간들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많았다. 특히 선배들이 만든 '세계 최강'이란 타이틀을 후배들이 지켜줬다는 것에도 감사함을 느꼈다.
22일은 감동이 두 배로 흘러 넘쳤다. 성적은 지나 10일보다 좋지 않았다. 그러나 여자 선수들은 마음 속 깊은 곳의 감정을 후벼 팠다. 여자 1000m 결선이었다. '원투펀치' 최민정(20·성남시청)과 심석희(21·한체대)가 결선에 진출한 상황. 누구든 한 명은 금메달을 따겠거니 했다. 그러나 최민정이 두 바퀴를 남겨두고 장기인 바깥쪽으로 추월하면서 심석희와 동선이 겹쳤다. 결국 코너링에서 원심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미끄러졌다. 최민정은 심석희와 충돌하면서 넘어져 심석희도 아쉽게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그러나 심석희는 아쉬움보다 동생 최민정을 먼저 챙겼다. "민정이가 혹시 다친 게 아닐까 걱정이 돼 괜찮으냐고 물어보고 어디 다친 데 없는지 확인했다."
이 장면을 보고 이제서야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최민정과 심석희는 알다시피 팀 내 '두 개의 태양'이었다. 한 공간에 함께 하기 힘든 존재들이긴 했다. 그래서 억측이 많이 생겨났다. 대부분이 불화설이었다. 당연히 경기장 안에선 메달을 위해 표정과 행동을 숨겨야 하기 때문에 밖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경기장 밖에선 둘도 없이 친한 사이다. 최근에는 SNS 라이브방송도 함께 진행하기도 했다.
감동 코드는 남자 5000m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임효준이 22바퀴를 남겨두고 코너링을 하다 미끄러졌다. 안간힘을 쓰며 따라잡으려고 애썼지만 이미 불붙은 스피드를 끄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임효준은 망연자실했다. 자신의 실수 때문에 1년간 공든 탑이 한 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경기가 끝난 뒤 좀처럼 주저앉아 일어서지 못했다. 500m 시상식 때도 시선을 내리깔며 무표정한 모습이었다. 웃음을 지을 수 없었다. "팀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는 것이 임효준의 속마음이었다.
기대했던 금메달을 놓쳤지만 결말은 환한 웃음이었다. '맏형' 곽윤기(29·고양시청)와 김도겸(25·스포츠토토)은 임효준을 따뜻하게 안아줬다. 임효준은 "형들이 안아줘서 더 미안했다"고 말했다. 엄청나게 큰 빚을 졌다. 그러나 자신을 안아준 형들을 보면서 임효준은 많은 걸 느꼈을 것이다. 생애 첫 올림픽을 치른 임효준은 큰 경험을 얻게 됐다.
그렇게 안아주고 울고 웃으며 올림픽을 위해 고생한 것들을 훌훌 털어버린 이들은 모두가 떠난 경기장을 다시 찾아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겼다. 임효준도 그제서야 웃을 수 있었다.
포기를 모르고 동료애를 존중할 줄 아는, 또 올림픽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이들은 이미 금메달감이었다. 강릉=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