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 없이 피는 꽃은 없었다.
국제대회에 출전했다 하면 금메달을 휩쓸었던 최민정(20·성남시청)은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 선수 인생의 가장 저조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6위. 충격이 컸다. "어찌 보면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기도 했다." 최민정의 솔직한 고백이었다.
2015년과 2016년에 이어 대회 3연패에 대한 욕심이 컸다. 뼈아팠던 건 평창동계올림픽 자동 출전권을 심석희(21·한국체대)에게 넘겨줘야 했다. 최민정은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해 평창행 티켓을 얻었지만 자존심의 큰 상처를 받았다. 그러나 당시 얻은 것이 많았다. '욕심을 내려놓을 줄 아는 선수'가 됐다. 최민정은 "2017년 세계선수권에서 성적이 부진하면서 마인드가 변화가 생기고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고 되돌아봤다.
동·하계올림픽 사상 최초 4관왕에 대한 기대감과 부담감이 공존하던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준비하면서도 한 가지 목표를 세웠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지난 13일 여자 쇼트트랙 500m 실격 이후 최민정이 정신적으로 빠르게 회복해 17일 1500m에서 금메달을 따낼 수 있었다.
최민정은 500m 실격 충격 이후 3일간을 어떻게 버텨냈을까. 세 가지 숨은 비밀이 있었다.
첫째, 어머니가 쓴 손편지로 위로를 받았다. 어머니 이재순씨(54)는 늘 뒤에서 최민정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딸이 올림픽에 출전하기 일주일 전에는 손수 편지까지 써줬다. '즐겁게 했으면 좋겠어. 너를 항상 믿고 있으니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즐겼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어머니의 손편지는 마치 최민정에게 부적과도 같았다. 몸이 힘들 때마다 꺼내봤고 500m 실격 이후 눈물을 펑펑 쏟은 뒤에도 편지를 읽으며 마음을 다스렸다. 최민정은 1500m 금메달을 따낸 뒤 "어머니에게서 받은 손편지에 위로를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둘째, '대표팀 맏언니'이자 '룸메이트' 김아랑(23·고양시청)의 다독임이 있었다. 사실 최민정은 외로웠다. 아무리 결과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개인종목에서 금메달을 딸 가능성이 있는 선수는 최민정 뿐'이라는 평가는 '괴물'에게도 큰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출전한 올림픽 첫 종목인 500m에서 실격으로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하자 최민정의 부담은 더 커졌다. 주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도 커졌다. 하지만 최민정의 곁에는 2014년 소치 대회를 경험한 김아랑이 있었다. 김아랑은 "많이 아쉬워하더라. 민정이와 같이 방을 써 그날도 민정이가 들어올 때까지 안자고 기다렸다"며 "민정이는 워낙 성숙한데다 힘들겠지만 잘 이겨내더라"고 말했다.
마지막은 자기성찰이었다. "500m에서 성급했던 부분이 있었다." 성적이 부진한 걸 남 탓으로 돌리기보다 자신의 부주의로 인정했다. 그러자 떨어질 것 같던 자신감은 유지가 됐다. 최민정은 "1500m에선 '스스로를 믿자'로 생각한 뒤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환한 웃음을 되찾은 최민정의 올림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000m와 3000m 계주가 남아있다. 또 다시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를 얻어도 빠르게 극복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아쉬움과 환희의 눈물을 쏟은 최민정은 올림픽에서 인생의 큰 진리를 깨달으며 더 큰 선수로 성장하고 있다. 강릉=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