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10년은 '윤성빈 세상'이 될 겁니다."
이 용 봅슬레이·스켈레톤대표팀 총감독(40)은 확신에 차 있었다. 단지 지난 16일 트랙 레코드를 세 차례나 경신하는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윤성빈(24·강원도청)이 '스켈레톤 황제' 대관식을 치른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마르틴스 두쿠르스(34·라트비아)처럼 세계 정상을 유지할 수 있는 완숙된 기량과 천재성, 그리고 장기적인 계획에 의해 계산된 예측이었다.
이 감독과 조인호 스켈레톤대표팀 감독(40)은 지난 8년간 평창올림픽을 준비하면서 평창만 바라보지 않았다.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까지 염두에 두고 계획을 세웠다. 조 감독은 "사실 평창올림픽은 과정일 뿐이다. 좋은 결과를 얻어야 하는 건 당연했지만 한국 썰매대표팀은 4년 뒤까지 장기 계획을 짜놓았다"고 밝혔다.
이 감독과 조 감독의 철저한 계획 속에 한국 스켈레톤은 향후 10년간 세계 정상에 자리할 수 있게 됐다. 이미 완성형 선수가 두 명이나 있다. 자타공인 세계 최강 윤성빈과 '동갑내기' 김지수(성결대)다. 얼핏 '홈 이점 때문에 올림픽에서 반짝 할 수 있었던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얘기하면 '아니다'. 윤성빈은 이미 전세계 16개 트랙에서 모두 1위 또는 2위를 차지할 수 있는 기량을 보유하고 있다. 입증도 했다. 2017~2018시즌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IBSF) 월드컵 7개 대회에서 5차례 1위, 2차례 2위를 기록했다. 기본적으로 90%의 기량을 갖추고 있는데다 홈 트랙 이점으로 95%까지 끌어올리며 금메달 경쟁자로 꼽히던 두쿠르스마저 범접할 수 없는 '언터처블'로 평창을 누볐다.
육상 멀리뛰기 선수 출신 김지수는 이제부터 월드클래스급 기량을 뽐낼 주인공이다. 이한신(30·강원도청)의 부상으로 생애 첫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룬 김지수는 지난 시즌까지 1부 리그 격인 월드컵보다는 2부 리그 격인 북아메리카컵에 출전하던 선수였다. 세계 수준과의 격차도 컸다. 그러나 올 시즌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눈에 띄게 기량이 향상됐다. 지난해 11월 초 캐나다 휘슬러에서 열린 대륙간컵에선 7위에 오른 김지수는 세 차례 월드컵만 참가하고도 올림픽에서 6위를 차지했다. 특히 1차 시기에선 4위에 오르며 동메달을 바라보기도 했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평창 트랙 훈련에서 윤성빈보다 주행기록이 더 좋을 때도 있었다.
김지수가 윤성빈의 천재성을 따라잡기 힘들다는 건 스켈레톤계 관계자들은 공감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월드컵이 펼쳐지는 미주와 유럽 트랙의 패스트라인을 파악한다면 윤성빈의 강력한 대항마가 될 자질이 충분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윤성빈에게도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한 건 반가운 일이다. 윤성빈은 "경쟁자가 있는 건 내가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좋은 약이 될 것 같다"면서 "나도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많다. 누구에게도 양보할 생각은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지수는 "성빈이가 옆에 있어서 내가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었다. 성빈이가 하는 것 반만 따라하기만 하면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며 미소를 지었다. 더불어 "지금은 성빈이에게 '널 이기겠다'고 해도 성빈이가 신경을 전혀 쓰지 않는다. 그건 당연하다"면서 "4년 뒤에는 내가 '이긴다'고 했을 때 성빈이가 조금이라도 신경 쓰게 하고싶다"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현재 김지수가 윤성빈에 앞서는 건 농담 실력이다. "허벅지는 나도 62~63cm 정도 되기 때문에 (윤성빈과) 비슷하다. 그래도 종아리는 내가 더 굵다."
윤성빈과 김지수만으로도 4년 뒤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다. 그러나 그 동안 꽁꽁 숨겨둔 '비밀병기' 카드도 있다. 대한민국 스켈레톤의 미래는 정승기(19·상지대관령고 3학년)다. 2015~2016시즌 IBSF 유스시리즈 1~6차 대회에서 남자 스켈레톤 종합 1위에 오르며 주목을 받아오던 정승기는 이번 시즌 북아메리카컵에서 금메달을 2개나 획득하기도 했다. 정승기는 투자에 의해 만들어진 선수다. 중학교 3학년 때 스켈레톤에 입문한 정승기는 2020년 로잔유스올림픽을 위해 성장하고 있는 선수지만 이미 기량은 김지수급까지 올라와 있다. 조 감독은 "사실 정승기는 '비밀병기'로 숨겨놓았다. 아직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지만 천재성 만큼은 윤성빈 못지 않다. 이제부터 세상 밖으로 꺼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4년 뒤 베이징에선 평창, 그 이상의 결과물을 보게 될 것이다. 한국 스켈레톤이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을 싹쓸이 하는 대형사고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이 꿈이 이뤄지기 위해선 반드시 정부와 체육계의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어느 종목이나 돈이 들겠지만 썰매 종목은 장비가 고가다 보니 돈이 더 든다. 여기에 외국인 코치 등 조력자들에 대한 인건비도 만만치 않다. 평창올림픽이 끝난 뒤 지원이 끊긴다면 '금메달 청부사'들은 중국의 러브콜을 이기지 못할 지도 모른다.
이것만 명심했으면 한다. 윤성빈의 금메달은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과물이다.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걸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할 때다. 평창=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