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대8.
공교롭게도 한국 아이스하키가 이번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기록한 세번의 스코어다. 첫번째는 10일이었다.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은 10일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스위스와의 첫 경기에서 0대8로 무릎을 꿇었다. 두번째도 단일팀이었다. 이틀 뒤 단일팀은 스웨덴을 만나 0대8로 패했다. 세번째는 17일이었다.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스위스와의 조별리그 두번째 경기에서 0대8로 패했다.
0대8. 의심할 여지 없는 '완패'의 숫자다. 하지만 한국 아이스하키가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면 부끄럽지 않은 도전의 숫자이기도 하다.
한국은 아이스하키의 불모지다. 남자 아이스하키의 경우 등록 선수는 겨우 2356명에 불과하고, 팀도 고교팀 여섯 곳, 대학팀 다섯 곳, 실업팀 세 곳뿐이다. 여자는 더하다. 여자 아이스하키의 경우, 등록선수 319명에 팀은 아예 단 한팀도 없다. 국가대표팀이 유일한 팀이다. 저변만 놓고보면 완패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스위스의 경우 2만6840명의 선수가 등록돼 있고, 이 가운데 여자선수가 1349명이다. 스웨덴은 6만3901명이 아이스하키 선수로 등록돼 있는데 이 가운데 여자선수는 5505명이다.
이 엄청난 숫자의 차이를 줄인 것은 한국 아이스하키의 노력이었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는 전폭적인 지원에 나섰고, 선수들은 피나는 노력으로 화답했다. 협회는 상무를 아시아리그에 편입시키며 핵심 선수들의 군입대에 따른 전력 공백을 최소화했고, 외국인 선수 귀화, 백지선-새러 머리 감독 영입, 우수 선수 해외 진출, 대표팀의 해외 전지 훈련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선수들도 아시아리그 등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한단계 도약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씩 인재풀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여자 아이스하키도 여러차례의 해외 전훈과 우수 선수 영입 정책으로 분명 성장하고 있다.
그 결실을 조금씩 맛보고 있다. 지난해 4월 백지선호는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남자 세계선수권 디비전 1 그룹 A(2부리그)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톱디비전에 진출했다. 같은 달 여자 아이스하키도 IIHF 세계선수권 디비전2 그룹A(4부리그) 에서 우승하며 승격의 기쁨을 누렸다. 적어도 세계는 이제 한국 아이스하키를 '동네북'으로 보지 않는다.
호기롭게 나서기는 했지만 올림픽은 차원이 다른 무대다. 단일팀이 아닌 한국으로 나섰어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2부, 3부리그를 전전하던 남자 대표팀은 체코, 스위스 같은 팀을 만나볼 기회가 없었다. 여자 대표팀의 경우 말할 것도 없다. 평가전을 통해 조금씩 강팀에 대한 면역력을 높이기는 했지만, 실전은 다르다. 게다가 국가의 명예가 달린 올림픽 아닌가. '혹시나' 하는 요행을 바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0대8은 부끄러워할 스코어가 아니다. 북미아이스하키에 정통한 블로거 그렉 위신스키는 '평창올림픽에서 한국이 캐나다와 맞붙으면 162대0으로 깨질 것'이라고 조롱했다. 이전까지는 그랬다. 조롱이었지만 반박할 수 없는 팩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조금씩 강호들과 경기 다운 경기를 하기 시작했다. 여자 단일팀의 이진규는 0대8 패배 후 오열했다. 그는 "분명 더 잘할 수 있어서 억울해서 흘린 눈물"이라고 했다. 남자 대표팀의 신상우는 완패에 당황해 하며 "스위스가 잘했지만, 우리 플레이를 하지 못한 것이 패인"이라고 했다. 강호를 만났지만, 물러섬이 없었다. '이제는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선수들 머릿속에 자리하기 시작했다. 이것만으로도 한국 아이스하키는 더 성장할 동력을 갖춘 셈이다.
0대8. 완패이지만, 부끄럽지 않은 도전의 숫자라고 이야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릉=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